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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Mar 23. 2023

유치원이 쑥스럽다는 아이

너의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길

요즈음 육아에 있어서 '아이들이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커서 꽤나 수월해졌구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요즈음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아무래도 3월은 신학기인지라, 아이들도 부모들도 선생님들도 참 바쁘고 정신이 없지요. 제 어려움은 이 새로움을 뜻하는 3월과 연관이 있습니다.



3월부터 첫째 아이가 만 3년을 다닌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에게는 참 큰 변화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것은 어른인 저에게도 힘든 일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어린이집은 '보육' 중심이고 유치원은 '교육' 중심입니다. 아이 입장에서 어린이집에서는 세심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지만, 유치원에서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뜻하지요.



본디 온갖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여서, 첫째의 유치원 적응이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원래 밝고 활기찬 성격의 아이이기에 한 편으로는 큰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입학 첫 주 적응기간이 끝날 무렵 선생님께서는 하원하러 온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유치원이 어렵고 긴장이 되는지 말을 하지 않아요."

"아 그래요? 집에서는 정말 입을 한 시도 쉬지 않는 아이인데..."

아직 일주일 밖에 안 지났으니까. 크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삶의 크고 작은 문제들은 대부분 시간이 해결해 주니까요. 



바로 어제 유치원 학부모 상담이 있어서 선생님과 둘이 길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어느 날, 저희집 첫째가 일과 중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선생님께 다가오더랍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대답을 못하더랍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라고 선생님이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고 그제야 후닥닥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갔다고.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가 안쓰러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는 변화된 환경을 훨씬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길까 봐서요. 부모로서 유치원을 불편해하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 어떤 말을 해 줘야 할지 참 고민이 됩니다.



한 번은 물어봤습니다.

"유치원에서 말하는 게 조금 어려워?"

"유치원 쑥스러워."

쑥스럽다고 본인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 참 대견하고도 고맙습니다. 아직 유치원에 가면 무언가 마음이 불편한 모양입니다. 아마 아이의 마음에는 친구들과 선생님에 대한 낯섦, 새로운 공간과 규칙에 대한 긴장감이 공존하지 않나 싶습니다.



'유치원 말 안 하는 아이'로 초록창에 검색을 해 보니, 이것이 일종의 질환이기도 하더군요.

선택적 함구증 : 특정 상황에서 말하기를 거부하는 증상을 보인다. 불안장애 범주에 속하며 아동기에 주로 나타난다. 선택적 함구증이 있는 아동들은 일반적으로 불안감이 높은 기질을 갖고 있고, 일상적인 일을 수행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선택적 함구증에 대한 기나긴 설명을 읽다 보니, 아이가 자발적으로 말을 안 한다기보다는 말을 못 하는 것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 못하겠는 것이 얼마나 괴로울까요.



아이가 그저 "유치원에서 아직 말을 안 해요."라고 들었을 때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정신 질환 용어를 알고 다니 덜컥 겁이 납니다.

'4월에도, 5월에도 유치원에서 말을 안 하면 어쩌지?'

'초등학교 입학해서도 말을 안 하는 것 아닌가?'

어느 순간 보니 제 걱정이 몇 년을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외향적인 편은 아닌지라, 제가 우리 아이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꽤나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면 오죽하겠나. 또 기질이 다분히 예민한 우리 첫째는 오죽 어렵겠나 싶습니다.



아이가 요즘 잠들기 전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유치원 가기 싫어. 내일 안 갈래."입니다. 아마 다가올 오늘 밤도 그렇겠지요. 오늘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줘야겠습니다. 

"엄마는 어른인데도 낯선 곳에 가면 엄마도 마음이 불편해. 유치원에서 쑥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괜찮은 거야. 당연한 거야."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의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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