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잘마셔도 문제 못마셔도 문제.
오늘도 역시 입이 심심해. 한잔 생각에 침이 고이네.
언제나 필름이 끊기지만, 어째든 집은 찾아가니까! Let`s Go ~!
첨에는 천천히 한잔씩. 건배해 술잔이 깨질 듯이.
밑빠진 독에 물 채우듯이. 계속해 퍼부어 아침까지.
바비킴의 '한잔 더'는 내 노래방 애창곡이다.
나는 술을 잘 마실 줄 알았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치킨에 맥주를 드시면 한잔 먹어보라고
주시던 맥주를 홀짝홀짝 마셔보고는, '나 술 쎄네~' 하고 나중에 크면 '술 매일 마셔야지' 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고 어찌어찌 술자리에 참석했다. 소주에 오이를 넣어서 마시는 오이향 소주였다.
향이 좋아서 주는 대로 받아마셨다.
10잔쯤 넙죽넙죽 받아마시고는 기절해버렸다.
집에 오자마자 변기를 부여잡고 모든 걸 게워냈다.
다음날까지 화장실에서 오이 냄새가 진동을 하는 바람에 엄마, 아빠, 누나에게 한동안 핀잔을 받았다.
모든걸 게워낸 뒤에 쓰러져다음날 오후가 되서야 정신을 차렸지만
그 날의 숙취와 두통은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았고, 차라리 기절하는게 더 나을뻔했다.
그날로 나는 술을 못 먹는 DNA를 타고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랑 아빠는 술을 안 좋아해서 안 드시는 줄 알았는데 사실 두 분 다 술을 못하시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른들 말씀에 '술은 먹어야 는다'라는 말에
굴하지 않고 대학 신입생 OT 환영회 술자리에 참석했다.
그날 학교 잔디에 앉아 처음 보는 막걸리들을 마주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밤, 도라지, 검은콩 등등 이 세상 모든 막걸리들이 왜 여기 있는 것일까 싶었다.
한 가지 막걸리도 버거운데 그날 다 섞어 마시니 나는 그날 또 죽을뻔했다.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역시는 역시.
잔디에서 뒹굴다가 해가 지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을 가는데
내가 버스인지 버스가 나인지.
그날 또 왜 기사님은 방지턱을 세게 넘는지... 맨뒤에 앉아서 덜컹덜컹 내 속도 덜컹덜컹하는 바람에
내 속이 뒤집어 졌다.
결국 가다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어 게워냈다. 기사님이 백미러로 호통을 쳤다.
할 거면 내려서 하라고 말이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에 하차태그도 못하고 무작정 내렸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건 병원이었다. 다행히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이라서 저녁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안내데스크 간호사분이 어떻게 오셨냐고 물어보는데 듣는 둥 마는 둥 겨우 한마디 했다.
잠시만 쉬었다가 갈게요. 그렇게 응급실 소파에서 쓰러졌다.
깨어나 보니 9시가 넘어있었다. 2시간 넘게 거기서 혼자 쓰러져있었다.
부재중 통화 15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엄마랑 아빠가 걱정이 되서 전화를 했었다.
전화를 거니 데리러 온다는 말에 괜찮다고 했다. 눈치 보고 다시 도망치듯 응급실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탔다.
1호선은 왜 또 덜컹덜컹하는지 오면서도 몇 번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결국 집에 잘 도착했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정말 술을 먹지 말아야겠다 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술은 맛만 보고 내려놓는다.
마셔서 늘기는커녕 마시자마자 얼굴이 뻘게져서 오히려 사람들이 권하지 않는다.
어른들 말이 틀린경우도 있다.
덕분에 회식자리에서 고기만 주구장창 구웠더니 고기는 잘 굽는다고 칭찬을 받는다.
고기맛이 아트의 경지라고 칭찬해준 과장님께 이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다.
늘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는 대리운전기사로 친구들을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준다.
그 덕에 운전실력도 늘었다.
때로는 퇴근해서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 한잔에 치킨다리 뜯으면서
피로를 풀고 싶은데 그 맛을 모르겠다.
삼겹살에 소주 그 재미도 모른다.
피자에 맥주 그 재미도 모른다.
여름에 편의점에서 캔맥주에 오징어 땅콩 그 재미도 모른다.
치즈에 와인 그 재미도 모른다.
그 알딸딸한 기분을 알고 싶다.
술은 잘 마셔도 문제, 못마셔도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