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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Sep 06. 2020

꼭 일기를 하루 끝에만 쓸 필요가 있나요?

코로나로 바뀐 하루의 시작을 기록한 일기

매일 아침에 쓰는 일기

코로나 이전에는 시계를 보며 아침을 먹고, 저 멀리 타야 할 버스가 보이면 불편한 신발을 신었든 운동화를 신었든 무조건 뛰어야 했다. 왜 매번 버스정류장에는 나보다 버스가 더 먼저 도착하는지. 그렇게 간발의 차로 버스에 올라타 꼬불꼬불 코너링을 보드를 타는듯한 자세로 버티고 지하철로 환승한다. 총 약 1시간 10분의 출근길을 이겨내면 서울의 중심 도착. 누가 봐도 바빠 보이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직장에서 망부석처럼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으면 어깨와 허리는 조용히 망가진다.
코로나로 인해 긍정적으로 바뀐 점을 찾자면 단 한 가지. 이 생활패턴이 180도 바뀌었다는 점이다. 아침을 여유롭게 시작하는 날이 많아져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에 아침이 포함되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 시간이 소중하다 못해 일기를 하루에 두 번 쓰게 됐다. 아침에 한 번 자기 전 한 번. 월급을 받는 직장인에게 이런 아침은 앞으로 흔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과정을 담은 일기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따라 금세 쌓였다. 그중 가장 요즘 즐기고 있는 아침을 잘 드러낸 5일 치의 일기를 발췌했다.


1 DAY

AM 8:00

가족들이 아직 깨지 않은 아침.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 혹은 휴무로 모두가 늦잠이 가능한 요즘이다. 가족들 중 단연 1등 아침형 인간인 나는 오늘도 몇 시간이나 먼저 눈을 떴다. 

일어나자마자 아침 식사를 하지 않으면 기분이 안 좋아지기 때문에 혼자 조용히 냉장고에서 어제 동생이 사 온 써브웨이 샌드위치를 꺼내 방으로 들고 왔다. 우적우적 먹으며 보고 싶었던 예능 프로그램을 틀었다. 첫 방송 전에는 '봐야지'했던 프로그램인데 막상 시작하니 존재 자체를 잊은 프로그램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 아차! 놀랍게도 나는 이렇게 기대하다가 막상 방영하면 까먹고 안 본 프로그램들이 많다. 혼자 첫 방송 전에 머릿속으로 북 치고 장구치고 피리까지 불어 공연이 끝나나 보다.

샌드위치를 꼭꼭 씹어먹으며 모니터에 30분쯤 시선을 두었을까. 오늘 일찍 일어난만큼 하루가 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 분명 심심할 텐데. 왠지 이 프로그램을 아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3분의 1쯤 보고 정지 버튼을 눌렀다. 보고 있던 프로그램은 아껴뒀지만 마무리로 먹고 있던 써브웨이 쿠키는 아끼지 못하고 다 먹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읽은 글이 생각났다. 코로나로 집에만 있느라 심심한 사람들을 위한 집에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을 추천하는 글이었는데 그중 '평소에 듣지 않는 장르의 음악 듣기'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유튜브에 구독은 했지만 들어본 적은 없는 ASMR 채널을 들어갔다. 

'런던 카페 ASMR.'

여행덕후인 내가 입문하기 좋은 ASMR인 것 같아 재생했다. 접시에 포크가 닿는 소리, 외국인들의 알 수 없는 대화, 의자를 끄는 소리, 직원들이 설거지를 하는 소리가 매장에 울려 생생하게 들렸다. 헝가리를 여행할 때 한 카페에서 들렸던 온갖 소리와 똑같았다. 이 맛에 사람들이 ASMR에 열광하는구나. 구독해둔 AMSR채널 구독자 수가 49만 명에 달하는 것이 납득 가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나는 아침부터 영국 런던의 한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2 DAY

AM 7:30

오래간만에 출근한다는 동생보다도 일찍 일어났다. 태풍이 밤새 남쪽에서 많이 올라와 창 밖이 그림자 같다. 그늘졌다. 세수만 후다닥 하고 오늘도 바로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썰고 볶기 귀찮으니 요거트와 포도를 먹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냉동실에 묵은지처럼 꺼내 주는 주인 없이 앉아만 있는 미숫가루가 생각났다. 요거트랑 섞으면 어떻게 되려나? 

결과는 처참하다. 어릴 적 외할머니댁이 있는 시골에 가면 집 앞에서 두꺼운 목소리로 짖어대던 대형견 앞에 놓인 개밥 같았다. 하얀색 요거트가 더 꾸덕꾸덕해져 무슨 팬케이크 반죽 같기도 부침개 반죽 같기도 했다. 급한 대로 식탁 위에 남겨져있는 초콜릿 쿠키와 아몬드를 뿌렸다. 맛을 보니 요거트맛이 3배로 시큼해졌다. 아무래도 실패인 것 같다. 

부치기 전 반죽을 퍼 먹으며 노트북을 켰다. 

어제 생각해봤는데 확실히 오전에 긴 글이 잘 읽히는 것 같아 온갖 읽을 글들을 향해 클릭했다. 네이버 메인에 새로 놓인 기사들도 읽고 목요일마다 글을 쓰는 블로그 이웃님의 글도 읽고. 장문의 글들을 읽으면 언제나 같은 생각을 한다. '나도 긴 호흡의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떻게 이런 단어를 자연스럽게 쓰고 이런 문장을 생각해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왜 항상 쓰는 단어만 쓰고 같은 버릇이 나올까?


3 DAY

AM7:28

건강을 챙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 밤늦게 도착한 호박즙과 냉장고 속 반이 남은 대용량 무설탕 플레인 요거트가 그 주인공. 얼굴이 매일같이 붓는 편이라 호박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운 좋게 한 박스를 받게 되어 태어나서 호박즙을 처음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맛이 없다길래 '약이라고 생각해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입맛에 잘 맞는다. 밍밍한 호박의 맛이 난달까. 사과농축액이 들어갔다더니 끝 맛은 싱거운 사과즙이다. 몇 주간은 이 싱거운 즙으로 아침을 시작할 것 같다.

무설탕 플레인 요거트는 자칭 '건강한 식습관 프로젝트'를 하면서 끼니 대용으로 먹기 시작한 요거트다. 시큼한 요거트를 시작부터 그냥 먹기는 맛이 영- 아닌지라 과일도 얹고 잼도 넣어 먹었는데 몇 개월 사이에 시큼한 요거트만의 매력을 깨달아 요즘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먹는다. 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먹던 프로바이오틱스보다도 장 건강이 좋아지고 있음을 확실하게 경험하고 있어 꾸준히 구비해두고 있다. 

그렇게 건강식을 먹으면서 어김없이 포털사이트의 주요 뉴스들을 무작위를 클릭했다. 어제저녁에 뉴스를 보고 잤는데 그새 못 본 소식이 많다. 잠든 밤에도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오늘 날씨도 그 많은 일 중 하나다. 살짝 으슬으슬한 바람, 어쩐지 더 높아진 것 같은 푸른 하늘, 드문드문 보이는 뭉게구름. 가을이 왔다.


4 DAY

AM6:47

평일과의 주말의 경계가 무뎌져 주말이라고 늦잠을 자는 일은 없어진 지 오래다. 식탁 위에 남겨진 식빵 한 장과 아무도 먹지 않는 초코 라테를 꺼내 방에 들어와 먹고 있다. 어제 아침에 사 온 토스트 식빵인데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유독 맛있다. 두꺼운 두께 때문에 식감도 푹신푹신. 식빵은 특별한 맛보다는 '빵은 다 좋으니까'라는 생각으로 먹어왔는데 음미하려고 계속 씹으니 식빵만의 맛이 있는 것 같다. '건강한 식습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빨리 먹는 습관을 고치려고 많이 씹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음식의 맛을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무엇이든 노력하면 얻는 것이 하나라도 있나 보다. 

열심히 사는 모습에 롤모델이 된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BGM 삼아 틀어놓고 어김없이 구독해둔 언론사의 기사들을 읽었다. 결국 일주일 더 2.5단계가 연장되었는데 모쪼록 많은 사람들이 협조해서 다음 주가 마지막 2.5단계가 됐으면 좋겠다. 이제 완연한 가을 날씨인데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다. 가을은 유독 짧고 순식간에 더 추워져 항상 '더 많이 다닐걸' 후회하게 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5 DAY

AM 9:30

어제 내적으로 짐이 많아졌는지 기분이 안 좋아서 푹 잤다. 잠이라도 길게 자면 좀 마음이 안정될까 싶어 일찍 눈을 떴지만 다시 감았다. 유튜브 영상으로 배운 스트레칭으로 온몸의 근육을 풀었다. 세계여행 전까지 몸을 더 튼튼하게 만들고 싶어 꾸준히 하고 있다. 특히 만성으로 아픈 오른쪽 어깨와 무릎 관절이 걱정돼 더 신경 쓰게 된다. 건강 때문에 인생 버킷리스트를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몇 년 만에 3분 짜장을 먹었다. 3분 짜장에서만 느껴지는 짜장의 맛이 있다. 짜장 소스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라 흡입했다. 카레나 짜장 같은 소스가 덮인 밥은 꼭꼭 씹는 것이 어렵다. 물 마시듯 목으로 자동으로 넘어간다.

일어나자마자 먹는 밥은 그날의 할 일을 추진력 있게 하는 힘이 된다. 양치질로 입 안에 거품을 내고 컴퓨터를 켰다. 오늘도 BGM은 나의 롤모델님의 브이로그.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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