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가 불러오는 다양한 합병증
미역줄기 볶음을 만들 때는 미역줄기의 소금기를 뺀 뒤에 반드시 칼로 두어 번 썰어줘야 한다. 안 그러면 줄기끼리 서로 이리저리 엉켜 음식을 먹는 사람이 불편해진다. 나는 한 젓가락만 집어가고 싶은데 미역 줄기 전체가 딸려 나오는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이다. 최근 한 달간의 나는 꼭 자르지 않은 미역줄기 볶음 같다. 사실 이곳에도 글은 매일 쓰고 싶었는데 정리가 잘 안됐다. 그나마 강제성을 부여해 매일 쓰고 있는 삼십문장 내외의 일기조차 문장이 불안정하다. 다 쓰고 읽어보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글 실력 정말 형편없네'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게 지금의 나를 가장 잘 대변하는 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 요즘을 보내고 있으니까. 그래서 일단 쓰기로 했다. 칼로 자르지 않은 미역줄기 볶음이 완성되더라도 일단 볶음 자체는 완성하는 거다.
코로나로 인해 작년부터 휴직을 하고 있다던가 이직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다던가 돈이 없다던가 따위의 고민은 지나간 지 오래다. 그리 깊게 하지도 않았고 금방 본래의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본래 손 안을 벗어난 탱탱볼처럼 땅으로 빠르게 곤두박질치고 휙- 금방 올라오기는 성격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어깨 으쓱 한번 올려주고 다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블루라는 용어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증상이 있든 없든 작년부터 TV 유튜브 뉴스 기사 어디든 잊을만하면 툭툭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코로나 블루란 코로나19로 인한 무기력증과 우울감을 지칭하는 신조어를 말한다(국립국어원에서는 우리말로 '코로나 우울'이라 규정했다). 우울함과 우울증이 영역이 사뭇 다르듯 갑작스러운 휴직과 미래에 대한 고민에 휩싸일 때도 '나는 저 정도는 아니지'라고 생각했다. 그저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많구나'라고 힘든 세상에 대해 공감했을 뿐이다. 애초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일이 아니어도 사부작대는 것이 많았고 마침 집안일도 적성에 꽤 맞아 나만의 집콕 루틴을 만들며 혼자서도 잘 지냈다. '이제 출퇴근 힘들어서 출근 못 해!', '일 머리 없어서 이직 못 해.' 따위의 말을 웃으며 매일같이 말할 여유까지 있었으니 말 다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미리 대비했어야 했다. 몇 달 뒤 이상 조짐을 보일 것도 모르고. 코로나가 터질 줄도 모르고 2020년 추석 항공권을 결제했던 때만큼이나 한 치 앞을 모르는 나였다.
새해부터 바쁜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 바쁜 것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사부작대던 사이드 프로젝트나 가벼운 운동과 프리랜서처럼 하는 일들로부터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 하던 집안일과 요리도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혼자 삼시세끼 먹는 것에 대한 정성이 눈에 띄게 줄었다.
답답한 것은 그렇다고 이 하기 싫고 귀찮은 것들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다. 극단적인 계획파 아니랄까 봐 '해야 하니까'라는 일말의 의지로 매일 체크리스트를 작성했고 하나하나 체크해 나갔다. 운동도 업무도 집안일도 취미도 그 어떤 것도 놓은 것은 없다. 다 했다. 하지만 억지로 하는 것만큼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도 없다. 계획에 얽매이는 하루하루가 꼭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수능 때문에 억지로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받는 스트레스는 멀쩡하게 잘하고 있던 식단 조절에도 영향을 줬다. 치킨 피자 이렇게 무언가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배가 아프기 직전까지 먹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 종일 들었다. 마음먹고 뷔페 갔을 때나 하는 폭식에 대한 갈망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배는 안 고픈데 탄수화물을 잔뜩 먹고 싶은 가짜 배고픔은 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줬고 이렇게 계속해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우울감을 끌어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밤잠을 설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부터 생각이 많아지거나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으면 밤잠이 가장 먼저 알아챘다. '야 너 아직 생각할 거 남았어! 자지 마!' 하고는 새벽에 곧잘 나를 깨우는 것인데 그 증상이 오랜만에 찾아온 것이다. 보낼 일어나던 시간보다 한두 시간 일찍 눈이 떠지더니 점점 새벽 3~5시 사이로 더 줄었다. 절대 다시 잠들지 않아 새벽에 고요한 집 부엌에 앉아 유튜브를 보고 영어공부를 하고 아침마다 쓰는 감사일기를 썼다. '낮에 낮잠이라도 자겠지'했던 예상도 빗나갔다. 하루 종일 잡생각에 휘말려 낮잠도 오지 않은 날들이었다. 이렇게까지 다양한 합병증을 겪었는데도 나는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다이어트 후유증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뺀 체중에 대한 강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아주 돌파리 의사가 따로 없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코로나야 이 바보야. 2월이 시작되고 나서야 내가 그 유명한 코로나 블루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일 년 가까이 되고 매일 새로운 것 없이 반복되는 집 안에서의 하루가 계속되다 보니 마음이 못 버티기 시작한 거였다. 게다가 평소에 지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밖수니인 내가 일 년 가까이 외출 빈도가 급하게 줄었으니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거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합병증이 이어졌다. 낮에 혼자 있는데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나 시끄럽고 북적이는 공간이 가고 싶지를 않나 여러 사람과 떠들고 싶어 지지 않나. 코로나19 환자가 다시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서 해소하기 어려운 감정이 철없이 찾아왔다.
남들은 일 년 중 새해에 가장 생동감 있는 일상을 만들어가고 뿌듯함을 많이 느끼지만 나의 1월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빨리 지나갔으면-하는 '우울'이라는 단어를 가장 일기에 많이 쓴 달이다. 실제로 1월 31일 일기장에는 1월이 가는 것에 대한 기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 만나서 즐거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그렇게 이 글을 쓰고 있는 2월. 이 와중에도 남아있는 의지력은 있어서 늘어지기보단 억지로라도 무기력해지지 않으려 노력한 덕분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도 실컷 먹고 북적였던 하루 덕분인지 이러다 고독 사하는 거 아닐까 생각했던 어느 하루를 제외하고는 지난달보다 상태가 호전됐다. 줄줄이 딸려 나와 불편하게 하는 미역줄기 볶음 같은 글일지라도 어쨌든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써 내려갈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