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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Apr 15. 2021

포기도 도전과 같은 선택일 뿐이야

두 가지의 포기를 통해 깨달은 포기의 진짜 의미




요즘 SNS나 유튜브 등의 피드에 '포기'와 관련된 콘텐츠가 뜨면 부쩍 시선이 간다. 괜히 한번 클릭해보고 '맞아 맞아. 관둘 수도 있지.' 내적 끄덕임 열 번. 포기에 대한 관심은 최근 관둔 두 가지에서 비롯됐다. 첫 번째는 매월 굿즈를 제작하기로 한 목표를 쉬기로 결정 내린 것이고, 두 번째는 나를 억압했던 체중계 숫자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매월 굿즈 만들기는 작년 연말에 계획한 2021년의 목표 중 하나였다. 크리스마스 엽서를 제작하면서 달력 마스킹 테이프 등을 만들고 싶었고 실제로 1월과 2월 각각 떡메모지와 포스트잇을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스마트 스토어에 올리고 판매까지 경험해보니 판매는 제 취향이 아닌 것이다. SNS에 홍보도 하고 광고도 돌려보는 새로운 경험들을 할 수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 사이드 프로젝트로 하기에는 흥미보다는 일이 된 것 같았다. 열심히 하고 싶은 생각이 점점 줄어들었고 깨달았다. '나는 내가 소장하고 나누는 딱 그 정도의 제작을 좋아하는구나.' 고민 끝에 잠시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다. 나중에 다시 만들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 다시 도전해야지!

오랜 시간 붙잡으려 애썼던 체중계 위 일정 숫자도 포기했다. 다이어트 무월경으로 건강에 노란불이 들어온 것도 이유 중 하나이지만, 15kg을 감량해도 여전히 뚱뚱한 것만 같은 하한선 없는 욕심을 끊어내기 위함이 가장 컸다. 일상을 소화할 힘도 걸을 힘도 없는데도 자꾸 체중을 줄이려는 건강하지 못한 욕심이 있었다. 체중을 줄이려고 먹는 음식 양을 계속해서 줄이고 먹고 싶은 음식을 스트레스받으면서까지 참아내는 것 또한 성격을 예민하게 했다. 비록 그때보다 체중은 늘었지만 지금은 융통성 있게 가끔 양념치킨도 먹고 빵이 먹고 싶을 때는 단백질 쿠키라도 사다 먹으며 최대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방향의 체중 유지를 실천하고 있다.


계획적이고 끈기 있는 성장과정 때문인지 긍정적인 성격 때문인지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주변에서도 자칭으로도 '끈기 빼면 시체'이기 때문에 뭐든지 시작하면 일단 끌고 간다. 몇 년째 운영하는 채널들, 한라산 정상을 찍은 것, 1년간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 등 끈기의 끝은 항상 달콤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그 반대에 서 있는 포기는 의지박약 무책임함으로 받아들여졌다. 나에게 포기는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두 가지를 관두면서 '포기'라는 단어가 긍정적으로 생각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관두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했지만 몇 가지 글을 보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굿즈 제작을 관두면서도 미련이 남았다. '아 그만두면 안 되는데. 그래도 매월 하나씩 만들기는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나와의 약속인데 이렇게 어기다니. 아직 12월이 되려면 멀었는데....'

체중계 위 숫자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다가 요요가 오면 어쩌지? 배도 나오는 것 같은데. 어떻게 뺀 건데 1kg도 용납할 수 없어. 다시 살쪄 보일 거야.'

스스로를 자책하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끌고 가야 한다고 채찍질을 하고 있는 중에 인스타그램 피드에 본 문장이 있다.

버티는 것도 박수받아야 할 일이지만, 그만둔다는 게 그냥 막연히 두려워서 억지로 버티는 분들이 계시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만두는 것도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처럼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아차 싶었다. 맞는 말이다. 그만두는 것 또한 도전만큼이나 숱한 고민과 단호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포기도 도전과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말에 떠안고 있던 짐들을 굳이 끝까지 짊어지고 갈 필요가 없음을 인지하게 됐다. 그저 선택하고 놓아주면 나도 마음이 편한데 왜 끌고 가려고 하지?

며칠 뒤, 다른 글에도 시선을 두었다.


버팀을 그만두니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억지로 버텼다면 기회는 끝까지 닫힌 채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 또한 없었겠지.



그만두는 순간 끈기 없는 놈이라고 낙인찍힐 것 같아 힘들게 하는 일을 관두지 못했다는 어느 작가님이 결국 일을 그만두었을 때 새로 얻은 추억을 되돌아보며 적은 문장 중 일부다. 작가님은 그 시절 최고의 추억이 일을 그만둔 이후라고 언급했다. 반드시 끈기만이 달콤함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었다. 때로는 포기가 내가 생각지도 못한 길을 열어주고 더 넓은 시야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나는 애매하게 들고 있던 미련 두 가지를 내려놓았다.


포기하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나는 이전과 동일한 일상을 살고 있다. 내적으로 절망적이거나 우울하지 않다. 발을 빼지도 담그지도 않은 불안정한 자세로부터 벗어나니 오히려 더 가뿐해졌다. 작은 변화가 있다면 새롭게 발을 담글 무언가를 찾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이건 어떨까? 저건 재미있을까? 내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게 뭐지? 스스로에게 질문도 자주 던진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뭐라도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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