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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May 31. 2021

안 한 것에 대한 후회

새 직장 2주 차,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미루며 살았는지 깨달았다

여행사를 퇴사하고 새 직장으로 첫 출근을 한지 이주 차. 경력직으로 이직을 했기 때문에 첫날부터 정신없이 인수인계 및 여러 기획 업무를 쳐냈다 ('했다'라고 하기에는 마치 야구 같았다. 쳐내야 했다). 새 직장은 스타트업에 가까운 분위기다. 뭐든지 급박하게 들어오고 한 사람이 담당하는 영역이 넓다. 전 직장에서는 SNS 채널 운영 혹은 카피라이팅이 주 업무였다면, 여기에서는 퍼포먼스/콘텐츠/브랜딩 마케팅 모두 담당하고 있다. 첫 출근 하루 이틀만 해도 이렇게 다양한 영역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경계도 없이 마케팅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투입되고 있다. 출근한 지 이 주 동안 한 일은 이전 직장에서 한 달 동안 한 일보다 영역도 양도 네 배 이상은 된다. 브랜딩 메시지 기획, SNS 스폰서드 광고 집행, 브랜드 앱에서 진행하는 이벤트 기획 및 진행, 카카오톡 채널 광고, 앱 푸시 카피라이팅, 이메일 발송에 들어갈 시안 제작 모두 나의 일이 되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브랜드의 온드 미디어 채널을 운영하면서 '어떻게 하면 채널 팬을 어떻게 하면 끌어모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회 수를 늘릴 수 있을까?'만 고민하는 시절을 보낸 20대였다. 광고 에이전시에서 첫 입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직전 직장을 근무할 때까지 쭉 그 생각에 집중해도 문제가 없는 직무뿐이었는데, 그 고민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이 이미지를 보는 순간 스크롤을 멈출까?'

'광고 분석은 어떻게 하는 거지? 지표는 어떻게 보는 거지?'

'브랜드에 충성하는 팬을 자연스럽게 끌어모을 수 있는 방법은?'

'광고를 광고로 인지하지 않을 수가 있나?'

마케팅 전 영역에 걸쳐 고민을 하고 있다. 여기에 회사에 대한 적응과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있어 필요한 새로운 툴에 대한 적응이 겹치니 이 주동안 자괴감에 빠졌다.


'왜 진작에 이걸 공부하지 않았을까'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죄다 모르는 거야.'

이전에 내가 했던 업무는 업무도 아니었던 것 같고, 톱니바퀴 하나에 불과한 작은 일이라는 생각이 매일 매 순간 들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그 생각에 지배당해 여덟 시 사십 분까지 야근을 해도 보람찼던 퇴근길이 점점 후회의 시간이 됐고 집에서도 기분이 우울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것은 내가 지금 모르는 모든 것은 다 과거에 배울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엑셀도 수도 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아티클이나 영상을 많이 접했고 데이터 분석 능력은 마케터에게 필수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디자인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언젠가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미룬 지가 몇 년째다. 광고 분석도 첫 직장에서 좀 더 파고들었다면 충분히 더 공부할 수 있었을 거다. 이처럼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게 거의 다였다.

최근에 SNS에서 이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은 한 일에 대해서는 잘 후회하지 않는다. 안 했던 일들에 대해서 후회할 뿐이다.'

이제 와서 보니 그건 나의 미래를 예언한 거였네? '오 좋은 말이다'하고 넘어갈 때가 아니었어 이 사람아.


안 했던 일을 더 후회한다는 것은 꼭 직무 연관이 아니더라도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제주도로 한 달 살기를 다녀온 것, 혼자 크리스마스 유럽여행을 다녀온 것, 블로그를 시작한 것 모두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 본 적이 많다. 이 말인즉슨 했던 일을 잘했다고 자주 생각했던 만큼, 안 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자괴감에 빠져 지내다가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우연히 만난 문장이 있다.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나도 훌륭한 코끼리가 되는 과정을 겪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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