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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un 12. 2021

K-장녀도 칭찬을 먹고 자라요

자존감이 떨어지고나니 알겠다. 나를 칭찬한 것은 나 뿐이었음을

제목에서 추측이 가능하듯 대한민국 어느 집의 첫째 딸이다. 든든한 척 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한 어딘가 어벙한 부실공사 같은 첫째랄까. 그럼에도 K-장녀 아닐까 봐 외강내유형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성격을 사람들이 맞추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지인들이 '너 첫째지?'라고 한다.

인생 첫 직장이었던 회사에서 부당함을 참고 참다가 우울증이라도 걸렸는지 툭-하면 회사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팀장님은 그랬다.

"너는 외강내유형인 것 같더라. 겉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든 담담한 것 같은데 속은 엄청 여려."

그때 그 팀장님이 사람 하나는 잘 봤다. 겉으로는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고 심지어 웃음소리도 구어체보다는 문어체에 가까워 억지로 웃냐는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뭐든지 성실하다. 어릴 적부터 개근상을 놓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교실 문을 처음으로 열쇠로 열었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 버릇은 정말 여든까지 갈 생각인지 지금도 약속시간보다 이십 분을 먼저 도착하고 회사도 남들보다 삼십 분은 일찍 도착한다. 심지어 아침형 인간이라 주말에도 출근하는 날처럼 일어나 성실하게 하루를 연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템플스테이 새벽기도 시간인 새벽 네시까지도 당겨질 것 같다. 꼭 시간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하는 것을 크게 어려워하지 않는다. 블로그를 학창 시절에 시작했는데 어느덧 내년이면 계란 한 판이다. 매일 일기를 쓴지는 초등학생 때부터 쭉 썼으니 일종의 삼시 세 끼에 가깝다. 심지어 먹는 것도 꽂히면 그것만 몇 년이고 파니 끈기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분명한 것 같다.

이 성실함의 알맹이는 '책임감 혹은 죄책감'이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정해진 틀을 벗어나면 스스로가 못나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약속시간이 임박하면 심장이 뛰고 마음이 불안하다. 아침에 늦잠을 잘 까말까-고민하다가 침대 밖으로 발을 빼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한 시간을 더 자려고 눈을 다시 감으면 하루를 헛되게 보내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게을러 빠진 녀석. 24시간 중에 무려 한 시간을 잠에 쓴다고? 그러니까 더 성장할 수 없는 거야.'

인생에 대한 책임이 FM급이다.


K-장녀라면 응당 지니게 되는 성격이 있다고 한다. 쓸데없는 책임감, 심각한 겸손함, 습관화된 양보. 나 또한 한국의 첫째가 분명하다. 트리플 콤보로 세 가지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

이 중에서도 '심각한 겸손함'이라는 수식어를 읽고 초등학생 시절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아마 6학년이었던 것 같다. 화장실에서 다른 반이었던 두 명의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안녕"

"어! 안녕"

"너 진짜 예뻐졌다!"

"맞아 00 진짜 예쁜 것 같아"

두 친구의 호의에 내가 어쩔 줄 몰라하면 답했다.

"아니야 나 못생겼어."

아직도 생각난다. 당혹스러워하는 두 친구의 표정을. 겸손한 수준이라 셀프 디스 아닌가. 물론 지금은 이렇지 않지만 스스로가 치켜세워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


 대뜸 계란 한 판을 앞두고 한 가지 바뀐 생각이 있다. 지난날에는 정말 칭찬이 딱히 필요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 '뭐라 답해야 하지?' 너무 어려웠다. 초등학생 때만큼은 아니어도 고맙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낯 간지러운. 긁적이는 기분이 드는 상황에 가까웠다.

그런데 요즘 마음이 힘에 부쳐서 그런 걸까. 칭찬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

'나도 누가 감싸주고 칭찬 좀 해 줬으면 좋겠다'

이 생각을 매일 달고 산다. 생각해보니 주변에 칭찬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다. 야근에 사이드 프로젝트지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가족들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시간도 적고, 자주 만나는 지인이 없을뿐더러 그렇다고 남자 친구가 있지도 않으니(있다고 해서 꼭 칭찬해달라는 법도 없지만) 정말 칭찬 들을 일이 없다. 회사는 말할 가치도 없다. 어찌나 현실적인 말만 듣는지. 자존감 와르르.

특히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밤길을 걸으면 기분까지 센치해져 밤하늘만큼이나 갈망이 진해진다. 나이 서른이 다 되어가서야 애정결핍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럴 수도 있겠다며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홉수가 되니 나를 자라게 한건 셀프칭찬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특히 20대에는 시작부터 온갖 도전과 경험으로 칭찬할만한 성과가 많았다. 여행자 크리에이터 직장인 어느 면에서나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항상 셀프 칭찬을 해왔다. 자존감의 표본이다. '나님 기특하구먼!' 스스로를 쓰담 쓰담했다. 그걸로 충분해 타인에게 칭찬을 바란 적은 없다.

그런데 요즘은 일명 '러브 마이 셀프'가 잘 안 돼서 그런지 자꾸 타인에게 의지하게 된다. 이거 봐요! 잘했다고 해주세요!

웃긴 것은 첫째 딸 아니랄까 봐 속으로. 겉으로 드러내면 책임감 없어 보이니까.


K-장녀의 특징이 가부장적 제도였던 사회 탓이라는 둥 부모의 잘못이라는 둥 말이 많지만, 애초에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 첫째로 자란 친구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상황들을 겪으며 그런 성격이 됐다. 양보하고 본보기가 되어야 하고 모나면 안 되는 입장인 건 숙명이었다(아마 지금 첫째로 자라고 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냥 자연스레 머리카락이 시간이 지나면 자라듯 자연스레 습득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탓해봐야 변하지도 않는데 괜히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덕분에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장녀들과 그 어느 때보다 "맞아 맞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SNS를 떠도는 K-장녀 콘텐츠나 관련해서 나온 아티클, 관련 서적을 보면 얼마나  재미있던지. 그야말로 우리끼리만 키득댈 수 있는 특권이다. 아마 신조어도 장녀가 만들었겠지? 웃픈 탄생비화를 지녔겠구나- 지레짐작해본다.


이미지출처-@js_glowg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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