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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un 26. 2021

꾸준함의 비결

무언가를 오래 갖고 가는 동기는 무엇일까

유일하게 챙겨보는 드라마가 방송하는 날이라 본방 사수하고 씻고 나니 야근할 때와 비슷한 시간에 머리를 말리게 됐다. 휴식하느라 늦게 자는 건 야근 후와는 컨디션이 정말 다르지. 몸이 가볍다는 생각을 하며 방바닥에 앉아 드라이기로 젖은 머리를 말렸다.

머리를 말릴 때면 휴대폰으로 블로그를 들어간다. 방문자 수가 얼마나 나오는지 그날의 방문자 수를 체크하는 차원에서 들어가는데 오, 생각보다 잘 나왔다. 요즘은 매일 글을 쓰지도 못하는데 상위 노출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방문자 수가 부쩍 높게 나온다. 덕분에 블로그 평균 방문자 수가 올랐다. 예전에는 그렇게 노력해도 나오지 않던 숫자가 이제는 매일 기본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뿌듯한 순간들이 중간중간 찾아온다. 누군가 감사하다며 긴 댓글을 남겼을 때, 신경 쓴 콘텐츠의 결과물이 잘 나올 때 등. 또 다른 하나가 블로그 평균 방문자 수가 올랐을 때다. 블로그 방문자 수는 블로그가 개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블로그를 제외하면 대체로 한번 평균 방문자 수가 결정되면 잘 오르지 않는다. 네이버 메인에 노출되는 예외를 제외하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비슷한 평균 방문자 수가 나온다. 이렇게 망부석 같은 방문자 수가 오를 때, 나는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특히 블로그를 십 대 때부터 운영했는데 서른 살을 앞두고 있으니 더 감회가 새롭다. 일 방문자 수가 500명대에 불과했던 때나 저품질이 와서 블로그를 새로 파야했던 때를 아직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놓지 않았다. 퇴근 후에도 새벽까지 블로그에 몰두하고 귀찮은 순간에도 꾹 참고 사진을 찍은 결과는 어떤 기준을 세워도 긍정적이다. 커리어 취직 추억 조금 더 속물적으로 가보자면 돈까지 말이다.

블로그뿐만 아니라 일 년 이상 끌고 온 작고 큰 것들이 몇 가지 된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사진 찍기, 홈트레이닝,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하고 미지근한 혹은 따뜻한 물 300ml 마시기, 일 년에 책 12권 이상 읽기, 일기 쓰기, 영상 제작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이 브런치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고 지금도 하기 싫을 때가 많은 것은 여전하지만 참고 한 날이 훨씬 많은 것들이다.


잘 마르지 않는 머리카락에 드라이기 바람을 계속 쐬면서 문득 나의 꾸준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끈기에 대해서는 자주 생각하지만 항상 시원하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만 다시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무언가를 오래 갖고 가는 동기는 무엇일까?'

머리를 말리는 데에 오래 걸린 덕분에 두 가지 답을 내렸다.


작은 성취가 주는 선물, 지속력

이십 대 후반부터 느끼기 시작한 작은 성취의 중요성이다. 스물아홉의 내가 봐도 '와 어떻게 그렇게 살았지?'싶을 정도로 부지런했다. 아, 물론 공부는 빼고. 학교 공강이 길어지면 근처에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해 버스를 타고 다녀왔다. 덕분에 서울의 오래된 벽화마을이나 도심 속 공원들을 많이 다녀왔다. 한여름에도 땀 흘리며 부지런히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자칭 공강 출사를 다녔다. 이렇게 구석구석을 다니는 것이 당시에는 그저 취미였다. 좋으니까 다니는 거지 뭐.

하지만 그때의 발걸음들은 '좋으니까'보다 훨씬 큰 영향을 줬다. 새로운 공간을 직접 보고 말로만 듣고 글로만 읽었던 사실을 오감으로 이해하는 것 모두 일종의 도전이었고 도장을 깰 때마다 가 보고해 봤다는 성취가 뒤 따라왔다. 이십 대 초반에는 생각이 짧아 그 무형의 기분을 '즐거움'이라고 표현했지만 작은 성취를 자주 느꼈던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혼자 근처를 쏘 다니다가 혼자 국내여행을 다니게 되었고 한 단계 더 올라 혼자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 유럽, 아시아, 동남아를 다녀왔고 많은 분들께 사랑받은 여행 콘텐츠가 탄생했다. 닉네임이 된 여행 덕후의 시작에는 공강에 떠난 근처 나들이가 있다.

성취감이 다음 스텝을 밟게 했다. '이것을 해냈다면 이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용기와 시도를 불어넣어주는 작은 성취감을 알아차리는 것은 끈기를 발휘하는 데에 큰 몫을 한다.


계륵 같은 존재, 계획성

mbti를 맹신하지는 않지만 INFJ 답게 지극히 계획적이다. 개인적인 일이든 공적인 회사 일이든 계획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성격인데 이 극단적인 계획성이 내일을 일주일 뒤를 반년 뒤의 목표를 가능케 했다. 계획을 세워놓고 방학 숙제처럼 안 하면 또 모르겠지만, 성격상 미루는 것도 질색팔색 한다. 당장 안 하면 게으른 사람이 된다는 죄책감에 투덜댈지언정 일단 시작은 하는 것이다. 

계획적인 성격은 괴롭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죄책감이나 피로감을 자주 느끼게 한다. 깔끔하게 해내지 않으면 마음의 짐이 되어 해결될 때까지 스트레스를 준다. 이런 성격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스트레스 안 받고 그냥 막살고 싶은데-하면서 이마를 짚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구질구질할 정도로 질질 끌고 가 끝내 미션 클리어하면 신기할 정도로 바라던 바를 이뤄낸다. 

앞서 말했던 블로그 방문자 수도 이달의 블로그도 '언젠가는 되고 싶다'했던 것이고, 15kg 감량해서 얻은 체중도 옷 사이즈도 '나도 되어보고 싶다'했던 것이면서도 이번 생에는 글렀다고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이번 생에 글렀다'고 정해진 것은 없다. 이밖에도 많은 바람들이 이십 대에 이루어졌다. 이십 대 중반에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꿈꾸던 것을 다 이루고 사는 것 같아.'

지금도 많은 계획을 쌓아놓고 시간을 보낸다. 내년에 떠나고 싶은 세계여행, 꼭 한번 내고 싶은 책, 유튜버 등 미래에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그린다. 코로나로 작년과 올해 자꾸만 변수가 생기지만 계륵 같은 계획성이 변수를 뚫고 한 걸음 한 걸음 바라는 모습으로 데려가 주리라 믿는다.


그 사람이 먼저 하면 완전 '흥!'이니까

그럼에도 꾸준함에 어려움이 찾아오면 어느 인터뷰 기사를 생각한다. 정확한 문장은 차이가 있지만 의미는 이러했다.

'내가 싫어하거나 라이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하나 지정해두고 그 사람이 이걸 나보다 먼저 하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보세요. 질투할 것 같다거나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바로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홈트레이닝을 할 때 이 생각을 자주 꺼낸다. 운동을 극혐 하는 사람이지만 건강을 위해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서 매일 유튜브로 영상을 틀고 매트를 바닥에 펼친다. 할 때마다 '이렇게까지 고생하지 말고 그냥 맛있게 먹을 거 다 먹고 행복하게 살면 안 될까'하는 생각과 '아니야 그 사람보다는 건강하게 살아야지'하는 생각이 싸운다. 머릿속으로 전쟁을 치르면 어느새 영상은 끝이 난다.


최근에 오전 다섯 시에 일어나 영상을 제작하고 출근한 뒤, 오후 열 시 사십 분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와서 삼십 분 동안 영상 제작을 마무리한 날이 있다. 단톡 방 속 친구들은 진짜 대단하다고 했지만 실체는 피곤함에 찌든 쾡한 직장인이었다. 꾸준함의 비결은 별 거 없다. 설탕 잔뜩 바른 꽈배기 같은 달달한 미래로 스스로를 꼬시고 채찍질로 아프고 서럽게 만들며 질질 끌고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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