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이는 윤슬 Jul 21. 2021

2021년 상반기 중간결산

2020년 상반기 결산을 올린 지 일 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https://brunch.co.kr/@travelys/99


브런치에 써 온 글을 쭉- 다시 읽어보다가 2020년 상반기가 마무리된 시점에 쓴 상반기 결산 글이 눈에 띄었다. 이런 것도 썼구나! 써 놓고 책꽂이에 넣어둔 채 오랜 시간이 지나버린 일기장을 다시 꺼내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다시 읽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시기가 담긴 작년을 다시 회상하니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2020년 상반기만 해도 코로나에 겁을 지레 먹어 집에만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일 년 사이에 코로나가 많이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멀쩡하게 출퇴근을 하고 차분히 백신 맞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2020년 상반기 결산 글 마무리에는 언젠가 서서히 잠길 지금의 순간들을 2021년에 다시 꺼내들 때 '작년에 열심히 움직였구나'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다. 현실이 됐다.

'2020년의 나는 부단히 노력했구나'


유독 일기장에 '시간이 빠르다'는 문장을 많이 쓴 2021년 상반기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속절없이 흐른다'의 의미가 이런 느낌일까. 무엇을 했다-는 떠오르는지 않는데 시간은 벌써 한 해의 반이나 지나갔다. 달이 바뀔 때마다 '뭐... 뭐지' 당황스럽다.

아홉수에 삼재라는 말에 '별 개 다 있네' 웃었던 연초가 무색하게 상반기는 매일이 거대한 고개 하나를 넘는 기분이었다. 땀을 흘리며 하나 넘었더니 또 하나의 고개가 등장하고, 다리 후들거리며 겨우 넘었더니 또 넘으란다. 울먹거리며 기어 올라갔더니 눈에 들어온 또 하나의 고개. 철퍼덕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이 시간들을 회상하는 건 썩 유쾌하지 않지만 흉터까지도 다 내 별자리라고 했으니 기록해본다.



1월은 역시 시작의 달이다. 일명 새해 초심 버프를 받아 문구 브랜드를 운영하며 자체 제작한 제품을 선 보였고, 브랜딩 소모임을 통해 인사이트를 주고받았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체감한 경험이었다.

다이어트와 계획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마음의 여유가 부재한 달이기도 했다. 주말마다 외식을 하면서 평일 동안 다시 원상복구를 하는 과정에 대한 지침이 매주 반복됐다. 많은 유튜버들이 시간관리로 추천한 구글 타임테이블은 이미 계획적인 나에게는 오히려 독이 됐다. '이것만 해야 한다'는 강박이 마음을 괴롭게 했다. 이때부터 새벽에 눈을 떠 본의 아니게 새벽같이 일어났는데 지금까지 주말 평일 가리지 않고 일찍 일어나고 있다.

소소하게 즐거웠던 순간도 있다. 가족들과 윷놀이를 하며 새해 첫 날을 북적북적하게 지낸 것, 여수 팸투어 우수활동자가 된 날, 서초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역대급 트러플 파스타를 먹은 기억이 지금까지 강렬하게 남아있다.


2월은 우울함에서 탈출하려 노력한 달이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다이어트로 식음을 전폐하니 부작용으로 예민함과 우울감을 얻었다. 모든 것이 귀찮고 짜증이 났고 매일 와구와구 먹고 싶은데 참으려니 서러웠다. 역시 제일 먼저 나의 상태를 알아차린 사람은 엄마. 덕분에 양평 DTR 스타벅스도 가 보고 제부도로 가족여행도 다녀왔다. 아빠를 어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던 날이었다.

이때부터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돈을 벌고 싶다는 목표 의식이 강해졌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의 행복이다. 가족들이 먹고 싶고 입고 싶고 가보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3월에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고양, 부산, 대구, 서울 여기저기 뽈뽈 다녔다.

고양 이케아는 하루 종일 사람을 인테리어에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이래서 다들 이케아-이케아-하는구나 깨닫게 되는 가격이나 제품의 다양함이 종아리를 저릿하게 했다. 다 보고 나면 다리가 아프다.

부산 나 홀로 호캉스도 다녀왔다. 출장 겸 다녀왔는데 숙소가 해운대 해수욕장 바로 앞이라 거대한 바다를 1박 2일 동안 실컷 볼 수 있었다. 부산 해운대 바다는 어릴 적에도 몇 번 왔는데 여전히 거대함이 낯설었다.

오랜만에 첫 회사 과장님과 함께 일을 하기도 했다. 무려 국내 출장! 과장님께서 제안해주신 프로젝트 덕분에 대구의 맛집과 카페도 실컷 다녀오고 영상 촬영하는 모습도 견학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흔치 않은 기회다.


4월은 리모델링 시작이라는 거대한 이슈가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서른 살을 앞두고 있을 만큼 오래 살았던 집을 전체 리모델링하면서 잠시 서울 한복판에서 지냈다. 서울의 중심에서 지낸 한달살이는 낭만적인 듯 불편했다. 아무래도 집이 아니라 숙소라 익숙해질 수는 있어도 정이 가지 않더라. 요리를 할 수도 없어 열심히 사 먹었는데 식비도 만만치 않았다.

좋은 점은 역시 숙소 앞이 남들은 지하철 타고 일부러 오는 거리라는 점. 덕분에 밤식빵 웨이팅 맛집도 편하게 다녀오고 작업하기 편한 스타벅스도 알아냈다.

제주 한 달 살기와는 또 다른 경험이었던 서울 한 달 살기였다.


5월은 지금까지 재직한 회사 중 가장 근속연수가 길었던 여행업을 벗어난 날이다. 7월인 지금 시점에도 퇴사한 것은 후회하지 않지만 업계 자체만 보면 나에게 가장 일과 라이프의 경계가 흐릿한 영역이지 않았나 싶다. 덕업 일치가 맞긴 했나 보다.

무엇보다 코로나 이전에 있던 팀이 베스트였다. 그 팀이 계속 있었다면 아마 지금도 이직하지 않고 다녔을 거다. 일할 때는 차분하면서도 왈가닥 깔깔대는 순간이 많았던 팀이었다. 그런 팀을 좋게 봐주시고 밸런스를 잘 맞춰주셨던 팀장님도 지금까지 겪은 팀장님 중 베스트였다.

퇴사 후 바로 출근을 시작한 새 직장은 플랫폼 스타트업이다. 근무 위치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곳이다. 야근이 많아서 그렇지. 그 덕분에 일은 빨리 배우더라. 이전에는 콘텐츠 제작 영역에서만 일했는데, 이곳에서는 브랜딩 퍼포먼스 콘텐츠 다 하고 있다. 경험해보니 알겠다. 나는 콘텐츠 마케팅이 가장 잘 맞고 더 나아가야 브랜딩이라는 점을. 퍼포먼스는 하면 하는데 어렵다. 문과생이라 그런가.


상반기의 마지막 6월은 혼돈. 카오스다. 계속되는 야근과 맞지 않는 직무, 도와주는 사람의 부재로 스트레스와 서러움이 극에 달한 달이다. 기존에도 열 시까지 야근을 할 정도로 누가 봐도 업무량이 많았는데 유일한 팀원마저 퇴사하게 되면서 혼자 B2C파트의 실무를 치게 됐다. 입사 두 달 만에 번아웃이 올 정도로 일상이 부재한 하루하루가 '정신과를 가면 좀 의지가 될까' 생각할 정도로 괴로웠다.

그나마 위로가 된 순간은 등산이다. 1~2시간 오르면 꼭대기에 도착하는 등산의 특징은 평소 단시간 내에 목표를 명확히 이뤄내야 하는 성향에 딱이다. 물론  염 직전에 빠진 등산은 안타까운 타이밍이지만 운동 극혐론자가 잘 맞는 운동 하나 찾은 것만 해도 케이크 사서 촛불 끌 일이다.


이 글을 쓰면서 '무슨 일이 있었지?' 생각했는데 떠오르는 것이 없어 일기장을 펼쳐놓고 아하아하 하면서 썼다.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회사 일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커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근본적으로 이대로 근무를 지속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고 있다. 지속한다면 경력이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 버틸 수는 있을까? 버티면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일까?

이 고민의 결과에 따라 7~8월의 이슈가 달라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맞는 옷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