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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Aug 07. 2021

그저 그런 어른이 될 뻔했다

이십 대 초반, 일기장이나 여러 글에서 '그저 그런 어른으로 살지 않겠다'는 문장을 여러 곳에 썼다. 대학생의 눈에는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이런저런 이유로 그저 회사-집만 반복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꼭 평범하게 출퇴근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평범하게 사는 그분들도 정말 대단한 분들이었지만, 스무 살을 갓 넘은 패기 넘치는 대학생이 보기에는 많이 울적해 보였다. 어른이 되면 꼭 저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고민을 여러 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다짐했다. 여행하는 것 같은 삶을 살아야지. 매일이 새롭고 다양한 관심사와 경험이 함께하는 삶을 만들어야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이라면 최대한 즐거운 순간을 많이 만들어 볼래.

실제로 스물여덟 살 까지는 그런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마음도 행동도 주체적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보고 싶은 전시 하나를 위해 기꺼이 버스와 지하철을 탔고, 만들고 싶은 요리를 위해 동네 마트에서 재료를 공수해 왔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다른 곳에서 아껴 훌쩍 떠났다.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외식과 약속을 줄이는 게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였다. 다양한 경험을 얻는 길이라면 발걸음을 아끼지 않았다. 친구들이 약속잡기 참 힘든 밖수니라며 혀를 끌끌 찼다. 물어볼 때마다 어딘가에 가 있었고 무언가를 할 예정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가치관이 단단하니 한다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경험하지 않았다면 함부로 단언하지 말라고 했던가. 스물아홉과 새 직장 두 개의 변수를 만나고 생각이 많아졌다. 조바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서른이 코앞이라는 충격.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 리스크를 떠안고 싶지 않다는 불안. '그래 봤자 긍정충인 나에게는 잠깐의 소나기지'라고 우습게 봤지만,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우기였다. 시도 때도 없이 견고했던 가치관이 흔들렸다.

나이에 연연하지 않았다. 해가 거듭될 때마다 친구들은 우리 다 늙었다는 말을 연례행사처럼 꺼냈지만, 사실 나는 나이를 먹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나이보다 그 해에 내가 무엇에 도전하고 어떤 목표를 이뤄낼 예정인지가 중요했다. 나에게 서른도 삼십이라는 숫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이래서 서른 살에 관한 책이 서점에 가득한 걸까. 막상 반도 남지 않은 2021년 하반기를 보니 경험만 쌓는 내가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슬슬 자리를 잡고 안정적이고 단단한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맞는 것들을 고른다고 하지만 참을성이 부족한 것에 대한 핑계는 아닐까.

삶의 태도에 대한 고민을 차분하게 하고 싶어도 이때 당시 새 직장에서 사원이자 대리이자 과장 역할을 혼자 하고 있었기에 그릇 이상으로 쏟아지는 업무량을 어떻게든 주워 담느라 답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퇴근길에 생각을 하려 해도 서럽고 화가 나서 제대로 생각할 수 없었다.

일단 참아 보자는 생각으로 직장을 다녔다. 업무량에 이어 직무도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버틸 수밖에 없었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버텨야 해.'

'그래야 커리어에 흠집이 안 생겨.'

일상에 분노와 괴로움이 가득했지만 이게 어른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속에서는 울고 싶은 마음이 쌓여만 갔다. 성향상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야 하는데 꾸역꾸역 참으니 퇴근길 버스 안에서 매일 화가 나서 울고 싶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틴 두 달. 첫 직장에서 운 좋게 만난 성인군자 같은 과장님의 '많이 힘들지?' 한 마디에 쌓인 모든 눈물이 터졌다. 지금 생각하면 과장님도 참 머쓱했을 것 같다. 안부 겸 전화했는데 갑자기 울어댔으니. 과장님은 많이 당황하셨겠지만 그날 덕분에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 상태에서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어른은 하고 싶은 것을 뒤로하고 꾸역꾸역 참'참을성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기 위해서라면 새로운 도전과 과감한 결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섰다. 이십 대 초반부터 생각했던 삶에 대한 가치관이 아직 그대로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업무량 때문에 점심도 못 먹는다는 직원에게 '그래 그럼'이라고 말하는 상사의 대답에 또 한 번 확신이 섰고 회사에 퇴사를 고했다. 곧 도비가 될 예정이다. 몇 주간 그만두고 싶은 마음 위에 참을 인을 쓰느라 갈팡질팡 걱정과 고민을 안고 살았는데 역시 도비는 만병통치약이다. 마음을 비우니 그럭저럭 다닐만하다.


요즘 출퇴근을 하며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앞으로 어떤 경험을 새로 하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다. 회사가 아니어도 경력이 쌓였으면 좋겠고 그 과정은 '하고 싶어서'라는 마음에서 시작됐으면 좋겠다. 스물여덟 살까지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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