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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Aug 29. 2021

아이유랑 동갑이라 참 다행이야

아이유의 나이 시리즈로 되돌아보는 나의이십 대

최근 한 기업 채용 지원서 속에서 자꾸만 곱씹게 되는 질문을 받았다

지원자에 대해 노래 또는 시 소설로 설명하세요

스무 살부터 취업 대외활동 공모전 등으로 백오십 번은 확실히 넘게 쓴 지원서라 이제 질문은 돌고 돈다고 생각하는데 오래간만에 생각할 시간을 길게 주는 질문을 만났다. 

'나라고 생각했던 소설 속 인물이 있었나?' 

'시를 읽고 내가 쓴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었나?'

곰곰이 읽었던 작품들을 생각했지만 역시 시나 소설보다는 노래가 더 답에 가깝겠다는 결론이 섰다. 이어폰을 집에 두고 나서면 다시 집을 갈 정도로 음악에 시간을 기꺼이 바치기 때문이다. 음악 애플리케이션의 최신 음악 탭을 매일같이 들락날락하며 취향저격 신곡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노래로 시선을 돌리니 답은 금방 나왔다. 동갑내기 아이유(IU)가 있기 때문이다. 지원서에는 특정 노래를 대표로 하나 콕 짚었지만, 사실 특정 노래 한 곡을 정하기는 어렵다. 아이유가 지금까지 매년 낸 나이를 주제로 한 음악이 모두 나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유 노래는 타이틀곡과 수록곡으로 구분되지 않고 모든 노래가 사랑받고 있지만, 나이 시리즈가 특히 우리들에게 새로움을 선사하고 있다. 시리즈 첫 곡이었던 '스물셋'부터 '팔레트', '에잇', '라일락'까지 해가 바뀌면서 달라지는 자신의 감정이나 가치관을 노래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가는 혹은 뒤따라오는 동시대이지만 다른 나이로 사는 사람들은 이 곡을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겠지만, 같은 나이로 똑같은 24시간을 누리는 나에게는 매번 신곡으로 나올 때마다 "맞아 맞아!" 공감하게 한다.






얄미운 스물셋
아직 한참 멀었다 얘
덜 자란 척해도 대충 속아줘요


스물셋의 내가 딱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십 대 초반에만 가질 수 있는 당돌함이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공부는 안 하고 쯧쯧...'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했을지 모르겠다. 학교 수업보다는 돈 모아서 생활권 혹은 한국 밖의 새로운 세상을 볼 궁리만 했으니 말이다. 학교 공강과 방학을 활용해 부지런히 여행을 다녔다. 

여러 기업에서 주최하는 대외활동도 두탕세탕을 뛰었다. 대외활동을 하다가 다른 대외활동으로 자리를 옮기며 하루를 보냈다. 토익 공부보다 대외활동 미션을 더 열심히 했다. 

책상에 앉아서 받아들이는 지식보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방식이 더 나에게 적합한 배움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A+로 성적표를 가득 채울 자신은 없었다. 책상머리는 없다는 것은 이미 고등학생 때 확신했다. 이러나저러나 애매한 성적으로 채울 거라면 '해보고 싶다' 생각이 드는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매사에 앞뒤를 쟤지 않았고 다소 비논리적이어도 일단 질렀다. 소리로 치면 '우당탕 와당탕'에 가까운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물셋이기에 가능했던 행동들이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스물다섯의 아이유가 쓴 '팔레트'의 일부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취향과 가치관을 하나하나 발견해 가는 이십 대 중반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아침형 인간이라 일찍 일어나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해가 지면 집에 들어가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에 들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계획적으로 살아야 스트레스받지 않는 편이고,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격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스스로 마음이 불편해지는 타입이라는 결론이 선 시기도 이십 대 중반이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지금은 이게 좋으니 이거 할래!' '이렇게도 지내볼까?' 즉흥적으로 결론을 내렸다면, 이십 대의 가운데에서는 하나하나 내가 걸을 길을 확실하게 골랐다. '아 나는 이 길이 걷기 편하구나!' 하고.



다 잃어버린 것 같아
모든 게 맘대로 왔다가 인사도 없이 떠나
.
.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춰
정해진 이별 따위는 없어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


아이유가 '에잇'을 발표한 스물여덟의 2019년은 코로나가 세상의 모든 것을 뒤흔들어놓은 시기였다. 예고도 없이 찾아와 일 년 전부터 예약한 포르투갈행 항공권을 취소시켰고 일회용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을 들락날락하게 했다. 

여기에 다니고 있던 직장까지 주3 근무와 무급휴직에 들어가면서 반년 이상을 재택근무 혹은 휴직으로 보냈다. 

지금은 더 많은 확진자 수가 나오고 있지만, 당황스럽고 어수선하기로는 이때가 훨씬 강했던 것 같다. 

수많은 변수는 자칭 그리고 지인들도 인정했던 긍정충인 나에게도 무기력함이 찾아오게 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 아니 뭘 해야 할지 알아도 시작하기 싫은 기분. 분명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때이지만, 얻은 것이 하나 있다면 코로나가 터지기 전의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 정도를 실감했다는 거다. 한강 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배달 음식을 먹으며 깔깔댔던 친구들과의 시간, 가이드하느라 때때로는 힘듦에 짜증이 났지만 죽을 때까지 가져갈 것 같은 추억이 가득한 가족들과의 해외여행, 마스크를 쓰지 않아 온전히 들이마실 수 있었던 등산 중 나는 나무 향에 대한 그리움이 자주 찾아왔다. 스물여덟 나에게 오렌지 태양이 뜨는 섬은 코로나 이전의 모든 것이었다. 




지원서는 이미 다 쓰고 제출한 지가 며칠이 지났는데 노래로 나를 설명해 보라는 질문은 아직까지도 마음속 에 빙빙 돈다. 그리고 아이유가 쓰고 노래한 나이 시리즈 곡들을 다시금 차례대로 듣는 것이 루틴이 됐다. 이십 대 초반의 당참부터 중반의 깨달음, 후반의 그리움까지 아이유의 성장 과정이 곧 나의 성장 과정이었다. 아이유는 동갑이라 유독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존경의 대상임과 동시에 때때로 뒤처짐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여러 면에서 '나는 왜-'라는 말을 자주 하게 만드는 가수가 아이유이지만 '그래서 동갑이라 좋아 싫어?'라고 묻는다면 물론 좋다. 다행일 정도다. 아이유는 나이 시리즈를 자신의 이십 대를 기록하기 위해 썼다는데 덕분에 나의 이십 대도 노래로 남게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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