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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Dec 16. 2021

이십 대 동안 무엇을 소중히 여겼나

내가 생각하는 '어린 시절'의 마지막 십 년은 이십 대다. 이십 대까지는 어리다는 말이 입자마자 "엇, 이건 내 옷이고만!"싶은 예감이 오는데, 어린 삼십 대는 글쎄. 편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리다는 단어는 퍽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실제로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린 나이의 끝에 서 있다. 스물아홉이라고 하면 살아온 시간이 대수롭지 않지만, 이십구 년을 이 세상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면 또 대단하다. 지금 산 것만큼 더 살면 육십 살을 맞이한다고 생각하니 워우. 좀 무서울 지경이다. 이십구 년 동안 세상에서 '존버'한 기념으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진작에 십 년 단위로 회고하면 좋았겠지만, 열 살의 내가 혹은 스무 살의 내가 지난 십 년을 총망라해서 결산할 리는 없으니(그렇게 철든 학생도 똑똑한 학생도 아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린 나이를 회고해본다.


이십 대 동안 무엇을 소중히 여겼나





기록

기록이라고 하면 '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그랬나 보군'싶지만 아니다. 어떤 결과를 바라고 쓰기보다는 행위 자체가 곧 결과다. 쓰는 행위를 통해 후련함을 느낀다.

충동적인 경향이 있어 울컥하는 때가 많다. 사회에서는 겉으로 드러낼 수 없으니 참고 쌓아두는데 마음에도 용량이 있는지 꽉 차니 터지더라. 봇물 터지듯이 콸콸 터져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모든 것을 그만두는 일이 정기적으로 발생하길래 개선책으로 모든 것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일기장 브런치 메모장 수첩 블로그 그리고 인스타그램 등의 SNS에 모조리 적었다. 떠오르는 감정을 쓰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것처럼 휴대폰 컴퓨터 혹은 연필로 썼다.

때로는 퇴고를 하지 않고 발행 버튼을 눌렀다. 한때는 한 두 문장의 글이라도 신중하게 쓰려고 그럴 싸한 단어들을 많이 찾았는데 글이 나와 멀어진 모양새라 관두었다. 보기 좋은 글은 사랑받겠지만, 애써 포장하고 싶지 않은 글들은 내가 사랑해주면 되니까.

나에게 기록은 그저 '썼으면 됐다'에 가깝다.


카메라

이십 대 동안 가장 아낀 물건을 생각하니 '카메라'더라. 십 년 동안 카메라는 두 대를 썼다. 이십 대 중반까지는 인생 첫 카메라로 소니 a5000을 썼고, 후반에 진입하면서 소니 a6000로 바꿔 현재까지 쓰고 있다. 인생 첫 카메라는 대학생 시절, 혼자 휴대폰으로 사진 출사를 다니다가 '이쯤 되면 사도 돈이 아깝지 않겠다'싶어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장만했다. 새로운 공간에 가는 것을 좋아해 꼭 멀리 떠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시간만 나면 이곳저곳 버스와 지하철의 도움을 받아 다녔는데 그때마다 꼭 사진을 수십 장 찍었다. 인증샷의 의미는 아니었다. 또래들은 대체로 SNS에 올릴 자신의 모습을 많이 찍었지만, 나는 어딜 가든 직 풍경 사진뿐이었다. 공간을 좋아해 사진에도 공간을 주로 담았다. 골목길 건물 하늘 산 등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십 대 동안 찍은 사진은 1TB짜리 외장하드를 다 채우고 세 달 전에 새 1TB짜리 외장하드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촬영 실력도 편집 실력도 많이 늘었다. 지금 이십 대 중반쯤에 찍은 사진만 봐도 이걸 공개적인 채널에 올렸다는 게 무슨 자신감 인가 싶지만 어쨌든 그 근거 없는 자신감 덕분에 여기까지 왔고 그 과정에서 서포터즈나 사진 판매 등의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진을 넘어 영상으로 발을 넣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카메라에 있는 동영상 기능으로 찍은 영상 클립을 모아 유튜브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현재 370명대의 구독자와 함께 하고 있다. 카메라가 이십 대 후반을 완전히 바꿨다고 해도 무방하다.


블로그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글에 길게 언급해서 패스.


경험

인생 선배 역할을 제대로 해주셨던 지인이 이십 대에는 뭐든지 많이 해보라고 조언하셨는데 그 말 하나는 참 잘 실천한 것 같다. 경험에 최선을 다했다. 전시 뮤지컬 영화 등의 문화생활부터 국내외 여행, 템플스테이, 처음 먹어본 음식, 등산, 서포터즈까지 주어진 상황과 사용 가능한 통장 잔고 안에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했다. 다행히 혼자서 여행을 다니고 영화를 보고 모임 활동을 하는 것들에 거리낌이 없는 성격이라 해낼 수 있었다. 사실 경험을 하는 당시에는 노는 것에 가까웠다. 이것을 통해서 뭘 얻어간다거나 다 기억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었다. 현실 도피성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회사생활이 힘들어서 돈 쓰러 다니는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역시 경험은 어느 것과도 못 바꾸는 자산이 된다고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빛을 발했다.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는 데에 기준이 되기도 했고, '아 나 그거 먹어봤어!'하고 음식 설명을 할 수 있는 당당함을 주기도 했다. 여행은 모두 콘텐츠가 되어 운영하고 있는 모든 채널의 중심이 됐다. 여행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곳들을 갈 수 있게 해주는 팸투어 기회도 오지 않았을 거다. 영화 전시 등의 문화생활은 내가 어떤 취향인지를 스스로 깨닫게 했다. 나만의 기준들을 생겨나게 하는 경험들이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나 역시도 이십 대를 지내고 있는 누군가가 뭘 하면서 보내야 후회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세요'라고 할 것 같다. 가장 확장 범위가 넓은 것이 경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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