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를 덕질한 지 어느새 10년 차다. 여행만 가면 게스트하우스를 찾는다. 작년 마지막 여행이었던 경주에서도 게스트하우스가 베이스캠프였다. 이십 대 초반에는 또래들도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게스트하우스만 찾는 것이 유별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십 대 후반으로 자리를 옮겨 갈수록 일명 '호캉스'에 발을 넣는 또래들이 많아졌고 지금은 지인들의 95%가 호텔을 이용한다. 나만 여전히 여행을 계획하면 자연스럽게 게스트하우스부터 찾아 예약한다.
호텔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 크리에이터로 출장을 가거나 가족여행이 목적일 때면 선택 권한 없이 호텔을 가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이름 한 번쯤은 들어 본 여러 호텔을 가봤다. 호텔은 분명 편안한 곳이다. 그럴싸한 로비, 넷플릭스가 나오는 커다란 TV, 넓고 푹신한 침구 그리고 아침 대식가를 감동시키는 아침 조식 뷔페까지 부족함이 없다. 호텔 침대에 발라당 누울 때면 항상 생각한다. 이러니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호캉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그럼 나는 왜 굳이 좋은 호텔을 두고 게스트하우스만 고집할까?
첫 번째는 숙소에 기대하는 바가 호텔을 찾는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다. 호텔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혼자 혹은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추억을 만들고 싶어 한다. 프라이빗 독채 펜션이 호텔만큼 유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호텔에 와서까지 남이라 부르는 타인들과 엮이고 싶지 않아 한다.
나는 정반대다. 파티까지는 부담스럽지만(술도 안 마시고 저녁식사도 작년부터 안 하는 날이 대부분이라) 도미토리 객실에서 서로의 여행 그리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이것도 객실에 어떤 성향의 여행자들이 모여있냐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백색소음 같은 분위기를 좋아한다. 적당한 낯섦을 경험이라 여긴다. 여행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 마치 나만 알고 싶은 맛집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얻지 못하는 것을 나만 갖게 된 것 같은 어깨 으쓱할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또 하나는 여행을 전체로 두었을 때 숙소 안보다 밖의 비중이 높다. 뚜벅이인 데다가 바쁘게 여행하는 스타일이라 하루에 만 오천 보는 거뜬히 걷는다. 하루 종일 몸을 힘들게 하고 숙소에 도착하면 이층 침대 중 한 침대에 발라당 엎드려 소소한 대화와 일기를 쓰고 곧장 잘 준비를 한다. 숙소에서 무언가를 제대로 할 시간은 없다. '잠만 자는 곳'이다.
일찍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는 생활패턴도 한몫한다. 남들은 해가 지면 화려하고 북적거리는 밤을 보내지만 아침형 여행자는 밤 10~11시면 눈을 감는다. 그리고 5시면 눈을 뜬다. 일출 보기에 특화된 수면 패턴 소유자가 숙소에서 누리는 거라곤 침대와 화장실뿐이다. 베쓰밤을 넣어 반신욕을 할 욕조나 라운지 바 같은 것은 있어도 쓸모가 없다.
결정적으로 시간과 누군가의 일상이 느껴지는 곳을 좋아한다. 게스트하우스는 대체로 외관부터 누군가의 집에 온 것 같다. 벗겨진 페인트 칠과 사람을 자주 봐서 그런지 짖지도 않는 강아지(혹은 사람 따위는 이제 신기하지도 않은지 심드렁한 고양이)가 대표적인 예다. 숙소 안은 사장님과 스텝들의 일상 투성이다. 예약 관리를 하는 노트북에 연결된 얽혀있는 선들, 냉장고 속 반찬과 간식들, 건조대에 널려있는 옷들에는 그들의 삶이 녹아져 있다. 그 흔적들을 애정 한다. 분명 평범한 풍경들인데 항상 새로운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의 풍경은 신기하게도 머문 시간들이 쌓이면서 글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 목표를 세워주기도 한다. 영감의 원천과도 같은 공간이다.
역시 각진 유니폼과 대본 같은 완벽한 서비스, 블링블링 으리으리한 로비보다는 캐주얼한 옷차림, 하고 싶은 말이 섞인 정겨운 안내, 누군가의 집에 놀러 온 것 같은 낯선데 친숙한 게스트하우스가 더 취향이다.
조만간 여행을 떠나는데 이번에도 게스트하우스에 머문다. 특히 이번에 머무는 게스트하우스는 벌써 세 번째 가는 게스트하우스다. 정이 들어 이제 그 지역을 가면 자연스럽게 그 집부터 객실이 있는지 검색한다. 그래도 이왕이면 게스트하우스는 항상 새로운 곳을 경험하는 편인데 그 게스트하우스는 근처 동네 골목길을 모두 외웠을 정도로 익숙해져서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를 대하듯 소중히 여기게 됐다. 이번 게스트하우스에서 얻을 감정은 몽글몽글한 추억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