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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un 08. 2022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

사진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과정을 기록하다

자부심: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




지금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은 어쩌면 어린이 시절부터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필름 카메라밖에 없었던 때부터 늘 무거운 카메라를 가방에 넣어 다니며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주던 아빠였다. 나들이와 여행을 평균 이상으로 자주 다녔는데 그때마다 아빠는 영상과 사진으로 우리의 모습을 남겼고 그 결과물을 자라면서 숱하게 봤다. 특히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던 시절에는 TV로 어릴 적 영상을 숱하게 재생했다. 덕분에 짧은 다리로 올림픽공원을 뛰어다니는 동생과 나의 꼬꼬마 시절 어느 조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진은 지금도 거실 바닥에 앉아 먼지 쌓여있는 앨범들을 한 번씩 물걸레로 닦아주며 넘겨보는 게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시간이다.

자연스레 나도 아빠의 카메라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만지며 자랐고 이십 대 초반에는 휴대폰 카메라로 새로운 공간을 볼 때마다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휴대폰 카메라로 출사를 다닌다고 했더니 '엥? 휴대폰 카메라로? 헐...'이라고 어이없어했던 한 지인의 반응을. 물론 고작 휴대폰으로 뭔 사진 공부냐 했던 그 지인의 생각은 편향이었음을 8년쯤 지난 지금은 확신한다. 이렇게 더 사진에 빠지려고 그때 그렇게 찍었던 겁니다. 

글을 쓰고 여행을 하는 것만큼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요즘 풍경 사진 찍는 행위가 그만큼 좋다. 가끔 생각한다. '사진 찍는 직업을 향해 공부해볼까'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출근 전/퇴근 후에 공을 들이는 일들이 있다.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들거나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묵묵한 끈기 끝에 임계점 하나를 넘어선 경험을 했다는 건데 그게 구독자 수나 월평균 방문자 수 같은 숫자가 기준이 될 수도 있고 특정 제안이나 사람들의 댓글일 수도 있다. 아니면 버킷리스트를 생각보다 일찍 이뤘거나.

이번 주에야 '아하!' 한 건데 사진도 그 안에 들어가더라. 


사실 타인이 사진에 대해 긍정적인 조언이나 반응을 보여도 항상 '아니야 내가 무슨'했던 게 사진이었다. 좋아해도 '그냥 혼자 찍는 거지 뭐' 딱 여기까지. 특히 작년부터 부쩍 사진과 관련해 여러 좋은 반응을 받았지만 어쩐지 사진은 특수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능성조차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제대로 배운 적도 없으니 당당하지 못했다.

그런데 약 한 달 전부터 유독 사진에 관한 긍정적인 피드백과 문의를 많이 받았다. 사진을 어떻게 편집하냐는 문의부터 카메라는 뭐냐, 사진 실력 많이 늘었는데 알고 있냐, 언제 한번 재능 기부해달라 등 혼자 일기처럼 기록하는 거라는 생각을 뒤엎는 말과 글이었다. 그리고 찍은 사진들로 채운 인스타그램의 맨 밑 처음 올린 사진부터 슥슥 되돌아봤다. 이게 만약 타인의 사진 계정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깨달았다. 휴대폰으로 출사를 다닐 때 당시 '이 정도는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그 수준이 되었다는 것을. 그때 당시에는 높은 기대치였는데 8년 동안 묵묵히 사진을 찍은 끝에 그 임계점을 넘었다. 알고 나니 자부심이 생겼다.


생긴 자부심을 바탕으로 사진을 좀 더 깊이 공부하기로 했다. 지금은 마음에 드는 풍경에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담는 것에만 집중하고, 기술적인 부분은 사실 거의 모른다고 봐야 하는데 기술적인 부분도 공부해 보려고 한다. 공부는 어느 분야든 쥐약인 편이지만 누가 압박하는 공부도 아니니 아주 느리게 해 보려고 한다. 훨씬 잘 찍는 분들께도 찾아가 보고. 또 하나의 임계점도 10년쯤 붙잡아보면 넘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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