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간의 중국어, 잠시 안녕
일주일쯤 드문드문 생각을 했고, 마지막 기회였던 하루에는 종일 고민하다 결국 중국어학원 수강료를 환불 처리했다. 그렇게 9개월간의 중국어 도전을 잠시 멈췄다. '잠시'인 이유는 반드시 다시 잡을 것이기 때문인데 어차피 다시 할 것을 시작했을 때 진득하게 할 것이지-라고 묻는다면 시작한 것도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한 것인 만큼 이번에도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한 선택이었다.
8월부터 우울감이 극심해졌다. 매일매일 안 좋은 생각이 들었고 불안감인지 분노인지 불만인지 모르는 어떤 기분에 의해 하루를 소비해왔다. 해결책은 지금 당장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판단이 섰고 해결 대신 휴식을 선택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억지로 하는 것들을 최대한 가지 치자'
딱 이 기준에서 쳐내야 할 것이 중국어였다.
중국어는 작년 연말 출장으로 상해를 다녀오면서 중국에 대한 편견이 180도 바뀌면서 도전하게 되었다.
언어가 다 그렇듯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도전하는 나 자신이 뿌듯해서 열심히 한다. 한동안 집에 와서 써먹어보기도 하고 숙제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의 나는 좀 훌륭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역시 언어가 다 그렇듯 왕기초를 벗어나면 힘들어진다. 콩깍지가 벗겨지고 수업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고 부단한 연습이 있지 않으면 쫒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물론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왕복 3시간의 출퇴근길을 서서 다니는 나에게 퇴근 후에 공부를 한다는 것은 가끔은 괴로웠다. 왜 사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남들은 칼퇴하고 집에서 하고 싶은 거 하는데.
그럼에도 붙잡았던 것은 중국에 유학 갈 용기가 없는 나에게 준 일종의 대안이었다. 유학은 못 가니 이거라도 하자. 중국에서 생활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중국 가서 공부를 하고 취직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꽤 크기가 큰 도전 속으로는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다음 달 수강료를 냈던 것 같다. 그러다가 8개월째에 접어들었고 그 버팀은 이유 모를 우울감과 부딪혔다.
학원에서 선생님이 물어보는데 혼자 모를 때의 창피함, 기계적으로 해갔던 숙제, 하나를 배우면 예전에 배운 것을 까먹는 금붕어 같은 네 모습에 스스로 상처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런 것들이 나를 가끔이지만 밤잠을 설치게 하고 회사 일에 집중을 못 하게 하기에 이르렀다. 의미 없는 것에 돈을 매달 내고 있구나. 안 그래도 돈이 없는데.
호기롭게 도전할 때의 뿌듯함과 당참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듯이 도전을 멈추었을 때의 기분 또한 그 크기가 동일하다. 나의 그릇 크기가 작음을 인정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이것밖에 되지 않았구나. 나름의 이유가 있음에도 처량하다. 그 처량함의 무게는 언제나 맥시멈인 나의 에코백의 무게 같다. 어깨를 짓누르듯이 기분을 짓누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걱정할 거리가 줄고 해결도 못하는 것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졌다. 가만히 좋지 않은 기분을 유지하면 기분은 안 좋아도 불안하지 않다. 기분이 안 좋은데 편안하게 좋지 않다. 아마 이게 우울감을 덜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아, 이래서 각종 책에서 그렇게 휴식을 강조하고 있구나. 나는 그렇게 도전을 멈추는 도전을 함으로써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참 많은 책들이 휴식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 서점을 가면 그 흐름이 명확하게 보인다. 쉼에 대한 책이 서점의 평대를 점령하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에세이가 인기가 많은 때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포기에 대한 초조함이나 불안함을 없애고 싶어 하고 위로로 덮기를 바라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열심히 사는 것이 지금까지 올바른 사람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면 이제는 잘 쉬는 사람이 각광받고 있다. 포기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많이 바뀌었다. 그 덕분인지 근로법부터 사내 문화, 사람들의 소비 습관까지 세상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네가 경험을 한 만큼 그 변화가 올바른 방향이라 믿고 있다.
중국어학원은 쉬지만 9개월간 열심히 달린 나의 수고에 박수를 쳐주기 위해 HSK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중국어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면 오랜만에 악기를 배우려고 한다. 배운다기보다는 다시 친해지는 시간에 가까운데 잘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할 수 있으니 기대가 된다. 뭐든지 끝맺음을 어떻게 하느냐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잘 매듭지어 두었다가 언젠가 생각이 나면 다시 잘 풀어서 그 끈을 이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