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믿었던 때가 있었다. 혼자서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고 도전을 한 끝에 무언가를 이뤄내고 여행을 다니고. 친구와 동생과 무엇을 함께 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지수가 차고 넘쳤던 스스로에게 매우 흡족했던 시절이었다. 사실 엄마라는 안정감을 존재가 있고 친구와 동생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도 어렸는지 '역시 사람은 혼자 살 수 있어' 승리한듯한 생각을 자주 했다. 그 생각이 2년이나 유지되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지만 호시절이었다.
이제 와서 굳이 몇 년 전의 기억들을 꺼낸 건 오늘 친구에게 받은 생일선물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기프티콘과 함께 온 메시지 때문인데
'미리 생일 축하해! 곧 만나서 재미있게 놀자! 삶에 찌들어가는 우리를 위해'
많은 문장이 아니었지만 회사에서 이 메시지를 보고는 기분이 180도 뒤집혔다. 그만큼 충분히 감동적이었고 고마웠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며 쓴 글을 읽을 때면 그 마음이 참 몽글몽글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릴 적부터 나의 모습을 봐온 친구라 더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누군가를 10년 이상 놓지 않는다는 것이 요즘 같이 자신만을 신경 쓰기에도 벅찬 시대에서는 더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버렸기에.
그 몽글몽글하고 고마운 마음을 퇴근길에도 잘 데리고 있을 수 있었고 문득 두 기억들이 떠올랐다.
집수니 친구들의 외출
첫 직장생활에 운이 안 좋았는지 온갖 이유를 만들며 후배를 갈구는 선배를 만났더랬다. 탕비실 청소 가지고 뭐라 하지 않나-회사 전화로 뭐라 하지를 않나-업무 외에도 참 나를 못살게 구는 선배였다. 그분 때문에 매일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상하게 타 직원들은 다 아는 데도 개선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일만 잘하면 다 괜찮다는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덕분에 이제는 웬만한 사람 앞에서 포기하지 않지만, 그때의 나는 여린 사회초년생이었기에 자존감에 많은 상처가 생겼다.
그날도 그렇게 혼났던 날이었다. 웬만해서는 절대 친구한테 전화도 안 하는 내가 친구들을 동네 호프집으로 소환했고 두 친구들은 흔쾌히 바로 집 밖으로 나와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맙다. 게다가 그 친구들 엄청난 집수니인데 얼마나 귀찮은 외출이었을까.) 시작은 좋았으나 내가 그 불만을 토로하다가 생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내면서 분위기는 내 기분을 따라 땅 속으로 뚜-욱. 맞은편에 앉은 친구는 내 옆으로 와 토닥이며 힘들었지- 위로해줬고, 한 친구는 같이 화를 내주었던 것 같다.
그때 고마운 마음에 내가 사겠다고 했는데 굳이 더치페이로 돈을 입금해준 친구들의 문자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그 날의 기억이다. 그때 이후로도 회사는 계속 힘들었고 결국 퇴사를 했지만, 그럼에도 친구들의 말 한마디 토닥임 한 번에 나는 다음 날에도 출근을 하고 그렇게 원하는 때까지 경력을 쌓고 미련 없이 나올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 여행 중 맞은 생일
운이 좋게도 7년 만에 초등학교 때 친구와 연락이 닿았고 몇 달만에 함께 크로아티아를 함께 여행할 수 있었다. (그때의 적극성 대단하지 참.) 그리고 그 여행 일정 중에 또 운이 좋게도 내 생일이 포함되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여행을 막상 가면 풍경 보느라 길 찾느라 챙길 것들이 많기 때문에 생일은 잘 까먹는다. '나는 오늘 생일이다'하고 명심하면서 하루를 보내지 않기에 나 또한 별 생각이 없을 수 있었다. 숙소 주인이신 할머니가 안아주면서 생일을 축하해주고 친구가 타지에서 동네방네 "제 친구 오늘 생일이에요!"라고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해의 생일이 특별하게 느껴졌는데 클라이맥스가 또 있을 줄이야.
생일 저녁, 나름 분위기 있게 야외 테이블에서 파스타와 리소토를 먹다가 대뜸 하루 종일 매고 있던 가방에서 선물과 편지를 꺼내 주는 것이 아닌가. 순간 뭔가 싶을 정도로 굴러가던 뇌가 멈추는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더니 심지어 친구가 편지를 읽어주는데 크로아티아에서 울 일이 있을 줄이야. 그 날 웃으면서 울었다. 분명 행복해서 웃었는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기도 했다. 그 친구는 아직도 그 얘기를 나한테 꺼내며 놀리고 있고 그때마다 질색하며 흑역사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잊기에는 그 날의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의 하루가 생일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준 친구의 마음이 예쁘다.
사람은 역시 혼자 살 수 없나 봐
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걸까? 불만 덩어리가 친구들의 토닥임에 목소리에 다듬어져 더불어 살았을 때의 행복감을 깨닫게 했고 그렇게 지금의 나는 내 곁에 함께해주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 내가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이 감사한 마음이 닿을 수 있도록 나도 마음을 더 활짝 열고 손발을 가볍게 만들어 그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되는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지. 그러고 보면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꼭 나 자신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