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만났다
1.
한결같이 지각을 하는 지인이 있다. 100번이면 100번 모두 지각을 하는 것을 보면 역시 지각도 하는 사람이 계속한다는 말이 진리일 정도인데 최근에 만난 날도 역시 지각을 했다. 그 전날 분명 알겠다고 한 약속 시간인데 왜 당일만 되면 늦는 것인지 미스터리이지만 그날도 역시 제시간에 못 나간다며 늦게 나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미 나름 집을 나갈 시간을 감안하여 이전에 할 일들을 했기 때문에 심통이 나기 시작했다. 집을 안 나섰으니 다행이지-하며 소파에 앉아 애매한 시간을 보냈고 집을 나오라고 할 때 나섰다. 그런데도 한참을 안 나왔다. 20분 동안 안 나와서 그냥 먼저 가고 있겠다고 하고 버스를 타고 환승지에서 그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버스에서 화가 났지만 함께 가는 제시간에 나온 일행도 있고 해서 열심히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오늘 점심 네가 사.' 진심이었다. 시간에 대한 대가가 돈이라면 정말 값싸게 쳐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지각하는 사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각보다 그 뒤의 태도다.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한다. 지각이 습관이니 당연한 것이다. 그 태도가 항상 그 사람의 좋은 모습을 깎아내리게 한다. 점심을 안 사는 것은 넘어간다 치더라도 적어도 "너무 미안해. 내가 고치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 좀 더 노력해볼게. 많이 기다렸지?"라고는 할 법도 한데 지각을 할 때마다 넘어간다. 상대방의 시간을 얼마나 무시하면 매번 남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어놓고 웃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2.
회사에 전형적인 내로남불형이 있다. 그래도 회사이니까 웬만해서는 그냥 아하핳! 웃고 넘기는데 막내라는 이유로 나의 시간을 건드리는 경우가 있다.
다니고 있는 회사는 회사촌이라고 할 만큼 회사가 무수히 많아 점심시간이 되면 많은 회사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만큼 맛집은 일찍 나오지 않으면 못 먹는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기존 점심시간보다 일찍 나가는 경우가 많다.(물론 융통성 있게) 그럴 때면 선임님들과 함께 점심을 맛있게 먹기 위해 원하든 원치 않든 일이 많거나 급하지 않으면 스윽- 먼저 줄을 서기 위해 일찍 나서는데 이건 나는 내가 막내라서가 아니라 다 같이 맛있게 먹으면 좋기 때문에 일종의 호의를 베푸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내로남불형께서는 그렇게 보지 않았는지 맛집만 가려고 하면 '윤슬이 일찍 나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분은 이때만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막내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는지 항상 누구 한 명 희생할 일이 생기면 나를 찾았다. 이유는 항상 '막내', '어리니까'.
비가 올 때면 우산이 있으면서 쓰고 가기 귀찮다고 내 우산 아래로 들어오지를 않나- 난 편의점에 가는 것이 아닌데 편의점에서 뭘 사다 달라고 하지를 않나-.
참다참다 화가 나서 나는 그랬다. '먹을 거나 주면서 시키세요'.
난 그래도 아직은 나이가 어린 편인지 여러 공간에서 막내를 해봤기 때문에 막내를 대하는 여러 유형을 봐왔다. 항상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언니/오빠같은 유형, 만나기만 하면 돈을 내는 엄빠 유형이 있는가-하면 막내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초등학생 일진 유형이나 이번처럼 자신의 나이를 특권으로 인지하면서 자진해서 늙었다고 하는 노인형이 있더라. 아주 꿀밤 한 대 때릴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그래 놓고 본인은 혼자서는 절대 안 나간단다. 막내는 혼자 나가도 되고?
그분이 평소에 나를 위해 시간을 아낌없이 썼다면 나 또한 기꺼이 먼저 나섰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말할 때 '내가 일이 많아서 정말 미안한데 한 번만 먼저 가서 줄 서주면 안 될까?'라고 부탁했다면 화가 날 일은 없었을 거다.
직급은 결코 남의 시간을 막 써도 되는 위치가 아니다. 올라갈수록 후배의 일까지도 책임지고 본보기가 되어야하는 것이 직급이다. 그런데 그 내로남불께서는 평소에는 자신의 불만만 늘어놓다가 그 불만을 덮기 위해 아랫사람을 이용한다. 그게 안타깝게도 내가 타깃이 된 듯하고.
타인이 시간을 써주었으면 싶을 때가 어쩔 수 없이 생겼다면 '부탁'을 해야 하며 내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타인이 나를 위해 시간을 쓰게 됐다면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본다. 한 예로 현재 함께 일하고 있는 팀장님을 나는 굉장히 어른으로 보고 있다. 가면일 수도 있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그분은 항상 일을 줄 때나 부탁을 할 때 당연하다는 듯이 주지 않기 때문인데 그때마다 나는 매번 감동한다. 기쁘게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어쩔 때는 너무 미안해하셔서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진 적도 있다. 그만큼 단 한순간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막내한테 이런 거 시키면 안 되는데-"
"원래 업무는 아니지만 일이 많아서... 부탁 좀 드릴게요. 히스토리는-"
이런 말을 그때마다 열 번은 말씀하신다.
누구에게나 열 번의 미안함을 표현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빌릴 때의 순서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인상은 천지 차이니까.
상대방의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인생을,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특히 요즘같이 자신만 챙기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는 더욱더 그 마음이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