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이는 윤슬 Oct 12. 2022

인생 작품을 차곡차곡

적극적으로 전시를 다닌 결과, 인생작을 업데이트하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미술 작품을 실제로 봤다. 때로는 여행 중에 때로는 관람을 목적으로 갔던 미술관에서 운 좋게도 취향에 딱 맞는 작품들을 많이 영접했다. 영접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다. 인생작이라고 칭하게 된 작품들은 걷던 발목과 시선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손이 만든 그림 혹은 조형물은 영혼이 없지만 인간보다 더 생생하고 거대했다. 마치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처음 실제로 본 순간 같았다. "우와"만으로는 다 채울 수 없는 경이로움. 곧이어 숙연함. 인간은 생명이 없는 것들 앞에서 자주 작아진다.


한 해가 다 가면 정리하려고 했지만 연말에 정리하면 지금까지 봤던 작품들에 대한 호들갑이 사그라들 것 같아 일찍이 정리한다.




모네 <수련> 연작

교과서에서도 실컷 봤지만 역시 미술은 실제로 한 번이라도 보는 게 중요하다. 인상주의의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외우고 있는 것보다 별다른 배경 지식 없이 작품을 실제로 보는 게 더 충격적이다. 

말년에 눈병에 걸린 모네는 한계에 붓을 놓지 않고 순수하게 보이는 대로 집의 연못을 그렸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이 '수련'이다. 작품'들이'인 이유는 수련이 여러 점이다.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모네의 수련을 갖고 있는데 한국에도 고 이건희 삼성 회장 기증품으로 한 점 있다(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관람 가능). 

모네의 <수련>은 올해 두 번을 봤다. 처음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가장 큰 큐모의 이건희 컬렉션 전시에서, 또 한 번은 뉴욕 모마 미술관에서 봤다. 수련에 대한 경이로움은 어느 나라나 같은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모마는 가장 대접하는 작품이었다(별도의 공간을 만든 것부터 그랬다).

명료한 테두리가 없이도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신기한 그림이다. 색감조차도 '이건 무슨 색이야'라고 형용할 수가 없다. 

뭉개었는데 뭔지는 알 것 같은, 어떤 기준으로도 답을 내리기 어려운 작품이라 더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작품이라는 거다.

뉴욕 모마 미술관에서 본 세 개의 거대한 캔버스 위에 그려진 수련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크기뿐만 아니라 표현에서 오는 충격이 눈앞에 연못이 펼쳐진 듯하다. '그림 밖의 형태'가 아니라 '그림이라는 형태'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앙리 마티스 <댄스>

인생 작품 1위를 꼽자면 단연 '앙리 마티스'의 <댄스>다. 뉴욕 모마 미술관에서 작품을 실제로 봤는데 와... 이때의 놀라움은 잊지 못한다. 

앙리 마티스는 현대미술에 속하는 작가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꼽힌다. 마티스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게 되면 '색감'에 대한 얘기가 많다. 색채와 형태를 단순하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들을 그리는 작가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다 제쳐두더라도 사진으로 봤던 그림과는 크기도 표현된 스케치도 완전히 달랐다. 사진을 백날 찍은들 다 복제품에 불과하다. 유연하게 빙빙 도는 듯하면서도 왼쪽의 인물이 형태를 지탱하는 어쩌면 가장 사실적인 댄스가 아닐까. 사람의 키에 비해 훨씬 거대한 작품 속 사람들의 춤은 우주의 움직임 같기도 하다.


이중섭 <춤추는 가족>

앙리 마티스의 <댄스>를 연상케 하는 이중섭의 <춤추는 가족>이라 올해 본 작품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어찌 보면 앙리 마티스 작품이 그리워서 좋아하게 된 것도 같고 한편으로는 이중섭의 일대기를 배경으로 했을 때 오히려 작품이 슬프게 다가와 기억하고 있다.

춤추는 가족 역시 고 이건희 회장 기증품이다(아니 대체... 이쯤 되면 기증 안 한 작품들이 궁금해지는데...). 1986년 호암갤러리 전시 이후 처음 공개되는 작품을 보게 된 건 행운에 가깝다. 이중섭은 가족을 주제로 그린 작품이 거의 대부분이라 비교적 작품을 공감하기 수월해 정이 간 작품들이 많았다.


달항아리

평소에 조형물보다는 그림을 선호하지만 유일하게 시선을 오래 둔 작품이 '달항아리'다. 첫 이건희 컬렉션 전시였던 국립중앙박물관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 본 것으로 전시 기획면에서 신경 쓴 배경 덕분에 더 감탄한 작품이다. 달항아리 위에 뜬 둥근달은 완벽했으니까.

조선 18세기에 만들어진 달항아리에 대해서는 당시 전시 도록에 이렇게 쓰여있다.

[밤하늘의 둥근달, 이지러진 항아리, 더 이지러진 그림자의 형태 변주가 자연스럽습니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 도록을 구입한 건 신의 한 수였다. 이보다 더 자세하고 잘 기획된 전시 도록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약간 벼르고 만든 광기의 도록 같달까


강요배 <장미의 아침놀>

강요배 작가에 대해 알게 된 건 학고재 전시가 처음이다. 제주도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다양한 배경지와 색채로 만든 풍경화들을 볼 수 있는데, 여행덕후답게 풍경화를 좋아하는 내가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었다. 자연을 경험해야 오롯이 표현할 수 있다는 말씀도 공감 가는 부분이었다. 

여러 작품에 감탄했지만 최고는 <장미의 아침놀>. 먹구름에도 숨지 않고 강한 색을 보여주는 아침 해. 제주도의 새벽 동쪽 하늘에서 피어오르는 일출을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선 없이도 머릿속에 풍경이 그려지니 더 큰 감동이 온다.




▼ 각 작품이 있는 전시에 대한 후기는 별도로 정리했다.

- 학고재: https://blog.naver.com/dbstmfgustj/222883487482

- 국립중앙박물관 <어느 수집가의 초대> :  https://blog.naver.com/dbstmfgustj/222733290970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중접 기획전>: https://blog.naver.com/dbstmfgustj/222889987232

- 뉴욕 모마미술관: https://blog.naver.com/dbstmfgustj/222886228994

매거진의 이전글 2022년의 3/4을 정리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