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 재방송을 보다가 박경림편을 봤는데 아니 이렇게 멋진 사람을 봤나! 배경 음악처럼 틀어두고 딴짓을 하려고 했는데 그 딴짓이 배경이 됐다.
특히 꽂힌 문장이 있었는데....
어릴 적 저는 MC가 될 거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제 꿈을 궁금해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제가 막 떠들고 다녔어요. 될 거라고, 지키고 싶어서...!
물에 닿은 종이 위 글자처럼 형태가 불분명한 생각들이 있다. 그런 생각들은 간결한 문장으로 완성되지 않아 머릿속에 맴돌 뿐인데 타인이 명확한 문장으로 말해줄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맞아! 바로 그거야'! 유레카를 외친다. 이번에는 MC 박경림께서 딱 그 역할을 해주셨다.
꿈은 꾸고 있다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내 꿈은 그렇게 평온한 재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부터 지키고 있고 지키고 싶은 꿈이 딱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글 쓰는 삶'.
두 번째는 '지구를 여행하는 삶'.
한 두 번의 행위로는 이뤄지지 않는 삶이다. 사는 내내 기억하고 최대한 많은 시간 동안 실천해야 하는 것들에 쉬운 건 없다. 그게 금전적인 면이든 시간이든 나의 의지든 쟁취하기 위해 때로는 인내가 필요하고 갖는 대신 다른 걸 포기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 오기도 한다. 고통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글만 해도 그렇다. 종이와 연필뿐만 아니라 다방면의 경험과 이를 통한 사유, 정돈된 글을 위한 차분한 마음과 컨디션, 기술적인 노력 등 생각나는 것만 나열해도 24시간이 모자라다. 이 글을 쓰기까지 최근 2주 동안에도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서 '뭘 쓰지' 매일 심각한 감정을 마음 한 구석에 갖고 있었다. 썼다 지웠다. 쓰다가도 끝까지 못 이어가겠다며 버리기를 반복한 나날들. 배에 가스 찬 기분이었다. 전업 작가는 하지 않길 잘했다면서도 그 삶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바라고 있다.
세계를 여행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자주 가는 여행은 분명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심지어 점점 더 많이. 여행 그까이 거 하면 되지 싶다가도 나이 들 수록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만큼 단번에 '가자!'를 결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작년 상반기에는 20대 초중반부터 내내 계획한 세계여행을 가지 말까 고민했다. 지금 생각하면 잠깐 미쳤었나 싶지만 그때의 나는 나름의 사연이 있었으리라. 직장을 다니면서 성수기에라도 해외를 가려고 일 년 전부터 항공권을 구입한다. 그래도 비수기에 비하면 당연히 비싸지만, 이 때라도 안 가면 해외여행을 갈 가능성이 0 이하가 되니 현실 또한 이겨내야 할 것 중 하나다.
우여곡절 끝에 손에 쥐고 31살까지 온 거다. 이런 걸 보면 가끔은 이게 꿈인지 전쟁인지 헷갈린다. 꿈을 지켜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영화 '1917'이 생각난다. 영화 속 주인공이 공격 중지 명령을 영국군 수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달리는 장면들. 바로 이뤄내기 어려운 꿈을 갖고 사는 건 이토록 처절한 일이다.
그래서 잘게 쪼갠다. 작은 전투에서 이기는 경험을 쌓고 쌓으며 '이건 이룰 수 있는 꿈이다' 자신감을 키워간다. 글을 쓸 때는 오늘 딱 소재만 정하기로 계획하고 다 했다며 뿌듯하다고 일기에 쓰고, 월급 받으면 바로 여행 저축 통장에 얼마 이체하기만으로 잘했다며 매달 박수를 친다.
누군가에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의 미션에서 나오는 성공들은 치과에서 이를 뽑을 때 발라주는 딸기맛 마취크림 혹은 일할 때 듣는 노동요 같은 역할을 해준다.
'오 좀 할만한 것 같은데?'
'진짜 될 것 같은데?'
작은 성공의 경험이 지금까지 꿈을 지켜온 가장 큰 비결일 수도 있다. 꿈은 고통이라면서 못 이룰 꿈은 없다고 말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덤이고.
20대 동안 간직한 좌우명이 있다.
'내가 한 선택을 옳게 만들자'
실제로 그런 삶을 만들려고 노력했고 작은 성공들 덕분에 20대 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던 '그런 사람'과 얼추 비슷한 사람이 됐다. 지키고 싶은 꿈을 잘 지켜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