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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ul 02. 2023

첫사랑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뮤지엄산 <안도 타다오> 기획전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한 정신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해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는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성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사무엘 울만 <청춘> 中



전시를 좋아해 건물도 전시에서 작품 보듯 흥미롭게 보다가 건축 영상과 책을 찾아볼 정도로 좋아하게 된 계기에는 '안도 타다오'가 있다. 제주도 유민미술관? 일본의 스미요시 주택? 아니면 권투 선수였다가 돌연 건축가로 직업을 전향한 스토리? 어떤 게 변곡점이 되었는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새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로 안도 타다오를 꼽고 있었다.

지금은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을 가장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전보다 새로 알게 된 건축물이 많아졌고 보는 시각도 나만의 시각이 갖춰진 만큼 '안도 타다오 건물이 제일 마음에 들어!'라고 말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 하면 가장 먼저 그를 떠올리는 건 첫사랑이 첫 번째라는 의미 하나만으로 특별하게 기억되는 것과 비슷하다.

다소 강압적으로 통제해 자연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방식이 매력적이긴 하다. 안도 타다오 이후에도 많은 건축가들을 알게 됐지만 세상이 나에게 길들여지길 원하는듯한 건축 스타일로는 최고다. 원래 나쁜 남자한테 끌리는 법 아닌가. 건축이라는 세상에서 나에게 안도 타다오는 첫사랑이었던 나쁜 남자에 가깝다.

오랜만에 첫사랑을 다시 보러 갔다. 굉장히 적극적으로 찾아간 게 얼리버드 티켓을 전시가 열리기도 전에 구입했고 오픈한 첫 달에 다녀왔다. 뉴스가 뜨자마자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강원도 원주를 대중교통으로 다녀온 것도 처음이었다.

무려 안도 타다오가 먼저 한국으로 찾아왔다는데 어떻게 안 가겠는가. 그것도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에서 전시를 연다는데.




뒤늦게 그의 비하인드를 알게 된 느낌이다.

아 이래서 이런 건축물을 만들었구나.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었구나.

어? 이런 작품도 있었네?

연신 놀라고 자세히 들여다보며 관람했다. 그렇게 전시장을 두 번 반복해 보고 또 봤다. 전시를 보기 시작하기 전부터 예상은 했지만 이번 안도 타다오 전시는 2분기에 본 전시 중 가장 소중하고 뿌듯한 전시가 됐다.

 나는 항상 결과보다는 이를 위해 어떤 노력과 고민을 했는지가 드러나는 과정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크게 얻은 것도 수많은 도면과 스케치였다. 지난달 다녀온 에드워드 호퍼 전시에서도 습작을 가장 좋아했는데 비슷한 이유로 안도 타다오 특별전에서 가장 좋아했던 작품 역시 도면과 스케치다.

현장에서 그가 실제로 스케치를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데 그의 과거에 권투 선수가 있다는 게 가짜 뉴스는 아닐까-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건축가가 아니라 화가라고 했어도 충분히 납득했을 거다. 보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관람객이 "이거 실제로 그린 거야?' 하더라.


상상에서 실물이 나오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건축은 청춘의 정신을 잃지 않은 자만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갖고 있을 때 실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왜 안도 타다오가 사무엘 울만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알 것 같다.


안도타다오는 이번 특별전으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국내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중 인상적인 대목이 라면 사람들이 한때는 싫어했던 것들을 끝까지 이어나가는 원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었다.

'재밌는 것 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거절해요. 그렇다고 좌절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어딘가에는 실현하겠다 생각해요. 계속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실현이 되는데 그러려면 오래 살아야겠죠.'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삼아 어찌 보면 투박하고 어두운 비주얼을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서게 만들기까지 그가 어떤 마음 가짐을 갖고 있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 대학도 전문학교도 나오지 않고 암에 걸려 장기를 다섯 개나 적출한 사람이라고 하면 가진 게 없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힘이 센 걸 가지고 있는 듯하다. 100년이 지나도 유지되는 콘크리트 같은 사람 그 자체다.


순수하고 고독한 싸움을 이뤄내고 또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첫사랑의 발자취를 이해하며, '아 나도 진정한 청춘처럼 계속 고민하고 또 나아가야지' 생각하게 된 전시였다.

업의 분야는 달라도 열심히 이겨내야 할 동기부여를 얻은 기분이 든든하다.


역시 첫사랑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아주 경제 '80대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청춘의 마음을 유지하는 법' 인터뷰 인용


*공간에서 찍었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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