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뉴욕을 갔었다. 언젠가 가보겠지- 막연했던 목표를 갑자기 확- 당겨줘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뉴욕에 대한 낭만이 가득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뉴욕에 사는 이방인의 슬픔과 고독함의 비중이 더 크다. 그럼에도 도전을 이어가고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작가의 모습이 모든 페이지에 스며들어 있어 적당한 가라앉음이 책장을 계속 넘기게 했다. 뉴욕은 도전의 도시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고 처음 했는데, 실제로 뉴욕에 갔을 때 나에게도 뉴욕은 도전 투성이었다. 잔디밭에 털푸덕 앉아 광합성을 하는 사람들, 너무나 복잡했던 타임스 스퀘어, 동쪽 서쪽 방향에 따라 지하철 출구가 다른 대중교통 시스템, 같은 말을 해도 매번 다른 메뉴가 나오는 베이글집들, 대답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도넛 가게 등 지금까지 갔던 어느 도시보다 도전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래서 뉴욕을 다녀온 뒤로 책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 공감의 정도가 더 커진 거다. 비록 완벽히 작가의 감정을 알지는 못하겠지만, 무슨 말인지 대강 알 것 같다 정도는 된다. 그렇게 읽고 또 읽어 세 번째.
세계여행을 1분기도 안 남긴 지금 시점에 읽으니 얕은 긴장감도 느껴졌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독립하는 게 처음이라는 실감이 오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지- 혼자서 잘 해결해야지- 다짐하게 됐다. 믿을 사람도 해결할 사람도 나밖에 없다. 그렇지만 잘 해내고 싶다.
책을 읽는 동안 우울한 주간이 계속 됐다. 답 없는 인생 고민에 회사 일까지 더해져 마음에 물이 가득 차 무거워진 기분이었다. 슬픈 영화라도 봐야 하나 생각했던 날들의 버팀이 이 책이었다. 타지에서도 해내는 작가의 일기들이 버티는 동기를 줬다.
이번에도 많은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었다. 더 접을 곳이 없을 줄 알았는데 또 접고 싶은 곳이 생기더라. 인생 책은 계속해서 접을 곳이 생기는 건가 보다.
메모 1
요 며칠의 나는 너무 혼란스럽다. 내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쓸려가는 듯이 살고 있다. 앞으로 떠밀리고 있다. 나를 지탱하는 게 내가 아니라 외부적 요인들인 것 같은 느낌이 싫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그냥 순간의 기쁨 혹은 실망만 존재하고 조급한 마음만 늘어간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타인에게 주는 상처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몇 주째 운동을 쉬어서 그런 걸까? 작업을 안 해서 그런 걸까? 너무 많은 것들이 나에게 한 번에 흘러 들어와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아장아장 일궈 놓은 나의 텃밭이 태풍에 쓸려 내려가고 있다. 멈추거나 생각을 좀 정리하고 싶지만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것마저 쉽지가 않다. 현재의 나는 더 많이 흡수하고 싶은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욕심. 곰곰이 생각해 보았을 때 내가 정말 가지고 싶은 것과 경험하고 싶은 것들을 덜 선호하는 것으로부터 가려내고 싶지만 그것이 쉽지가 않다. 덜어내고 싶다. 휘몰아치는 파도가 잠잠해졌으면 좋겠다. 지나치게 익스트림한 보폭은 무섭고 내 바로 앞에 뭐가 있는지도 잊게 만든다. 글 또한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마음을 들여다볼 틈이 벌어지지를 않네. 둥둥 떠 있는 기분이 고꾸라지는 순간을 예고하고 있어서 무섭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기억해내고 싶다. 두려운 마음이 든다. 당장 주어진 회사 일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메모2
때로는 상대방이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말이 머릿속에 박혀 몇 년이 지나도 주기적으로 곱씹게 될 때가 있다.
"원하는 걸 쭉 밀고 나가다 보면 원하던 곳에 가 있거나 지금 내가 밟고 있는 곳이 원하는 곳이 되겠죠."
메모3
나이가 들수록 "그냥 재밌어서!"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일들이 적어지는 것 같다. 자꾸 남들에게 괜찮아 보이는 걸 하려고 한다.
메모4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바늘로 자기 살을 찌를 정도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메모5
오래전부터 내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였다. 내가 찾은 해답 중 하나는 성취감이었다. 그것은 내 마음이 매일매일 지펴주지 않으면 사그라드는 위태로운 불씨 같아서였다. 성취감만이 나를 울렁거리는 감정 기복에서 구해주었다. 나는 하루라도 가만히 있기 어려워서 늘 채우려고 노력했다. 비우는 여유 따위는 내게 사치였다. 행복하고 안정적인 기분에는 운율이 있어서 그 마음은 잠시 찾아왔다가 또 떠나고는 한다. 거기에 얽힌 수많은 인과관계들은 아주 예민하고 복잡해서 하나하나 내가 파악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스스로에게 맛있는 것 먹여주고, 잠 잘 재워주고,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