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마다 생각하는 여행의 정의가 다르다. 휴식일 수도 나를 많이 찍어두는 기간일 수도 있다. 나에게 여행은 세계관을 넓혀주는 존재다.
첫 회사 퇴직금을 들고 혼자 도망치듯 갔던 제주도 한 달 여행이 그랬다. 마을을 여행하는 재미를 얻었다. 공간부터 경계가 명확한 관광지도 당연히 좋아하지만, 그 땅을 일구어내는 현지인들이 만든 선 없는 풍경에 시선을 둘 줄 알게 됐다. 덕분에 지역 탐구에 대한 감상 글도 쓰게 됐고, 카메라에 담는 피사체도 관광지 이상으로 다양해졌다. 그건 곧 한 여행자의 특이점이 됐다.
혼자 떠난 첫 해외여행인 일본 오사카에서는 혼자서도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계기였다. 타지에서 길을 찾아 목적지에 도착하고 물건을 구입하고 끼니를 챙기는, 일상의 어느 조각을 완성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오사카에서 처음 깨달았다. 적어도 도전함에 있어서는 언어가 걸림돌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 현재 갖고 있는 자신감의 시작점은 2014년의 오사카여행이다.
경주 부여 공주 등 도시 자체가 역사로 유명한 지역들은 학생 시절 성적과 관계없이 그저 좋았던 국사에 대한 흥미를 이어주고 있고, 사찰로 떠나는 템플스테이 여행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뗄 수 없는 불교문화에 대한 인사이트를 넓혀주고 있다.
2022년 하반기에 떠났던 뉴욕여행은 첫 미주여행이었던 만큼 오랜만에 경험한 큰 변곡점이었다. 미술관들을 여행하면서 미술산업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커졌다. 세계적인 작품을 실제로 보고 내 취향인 작품들을 골라보는 과정이 여행 내내 큰 즐거움이었다. 다녀온 뒤로 미술 자체가 취미가 되어 관련 도서를 꾸준히 읽고 있다. 집에 미술책이 이렇게 많아질 줄이야. 최근에는 서울에서 열린 프리즈 아트페어도 다녀왔다. 언젠가 경매에 참여하고 싶은 목표도 생겼다.
그렇게 나의 세계관은 계속해서 넓어졌다. 아는 세상이 호기심이 발동되는 세상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이는 여행 자체에 혹은 여행 중에 한 선택과 결정의 결괏값이기도 하다. 다른 곳에 쓰려면 얼마든지 쓸 곳은 많을 돈을 굳이 제주도에 쓰기로 선택한 거다. 갈 곳 많은 뉴욕에서 세 곳의 미술관에 시간을 쏟기로 결정한 거다. 혼자 해외여행을 가보기로 마음먹은 거다. 그 의지가 내 세상을 넓혔고 지금의 내가 됐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든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좀 기특한데?' 쓰담쓰담은 해줄 수 있다.
여행은 이런 과정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작가 또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
이 책은 여행을 가라고 해도 가지 않던 작가가 전국을 쏘 다니게 되면서 겪는 호락호락하지 않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여행하는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변수들을 경험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보여준다. 이는 독자에게 여행 정보가 되기도, 공감하는 대목이 되기도, 한 사람에게 깊이 결부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이번 여행으로 인해 당장 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 경험이 앞으로의 제 인생에 수많은 선택과 결정에 영향을 줄 것이고 결국 제 인생을 바꿀 것 같아요. 그게 어떤 결과이든. 그래서 저는 이 여행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내 생각이 눈에 명확하게 들어오는 문장으로 쓰여져 있을 때, 무표정하게 읽던 책은 무한대로 아끼는 책이 된다.
메모1
"이번 여행으로 인해 당장 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 경험이 앞으로의 제 인생에 수많은 선택과 결정에 영향을 줄 것이고 결국 제 인생을 바꿀 것 같아요. 그게 어떤 결과이든. 그래서 저는 이 여행을 후회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