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밀크티가 타이 티라고 불릴만한 이유
호주 시드니에서 태국 치앙마이로 넘어갈 때도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러이끄라통을 위해 온 치앙마이에서 대뜸 밀크티에 놀랄 줄이야.
치앙마이에서 보내는 다섯 번째 이십사 시간. 가장 많이 뱃속에 넣은 건 팟타이도 쏨땀도 아니고 한국에서도 곧잘 마시던 밀크티다.
그렇다고 누가 한국에서도 마실 수 있는 걸 왜 거기까지 가서 마시냐고 한다면 '하지만 이건 한국에서 마시던 밀크티라고 하기엔 차원이 다른 맛인 걸?'하고 억울해할 거다.
태국의 밀크티는 'Thai tea' 혹은 'Iced tea with Milk'라고 쓰여있는 게 보편이다. 카페마다 반드시 있는 메뉴일 정도로 찾아 마시기도 흔하다. 타이 티라는 이름에서는 이 나라가 밀크티를 대하는 태도가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 밀크티와 다른 음료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태국의 밀크티는 좀 더 홍차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보다 홍차맛이 진한 것도 맞는데 단순히 진하다고만 설명하기에는 뭔가 다른 홍차맛. 현지인들의 레시피를 모르는 나는 이걸 태국의 맛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태국은 나에게 밀크티의 나라로 인식되게 됐다.
태국 치앙마이 첫 끼니로 갔던 블루누들(한국인들에게 매우 유명한 갈비국수 맛집)에서 주문한 밀크티는 타이 티 예찬의 서막이었다. 한국의 백다방을 연상케 하는 간 얼음에 가득 담겨 나온 밀크티의 첫인상은 사실 물음표였다.
'음? 밀크티 색깔이 왜 이래?'
크레파스 세트에 들어있는 상아색과 너무 똑같아서 오히려 음식의 색깔이 아니지 않나 생각하게 하는 기묘한 첫인상이었다. 이...일단 도전.
빨대를 입에 문지 오초도 되지 않아 상아색의 기묘한 밀크티는 충격적으로 맛있는 음료로 변했다. 진심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화가 난다고 하지 않는가.
'와C 이거 뭐야?'
한국에서 밀크티를 처음 마셨을 때도 이렇게까지는 감동하지 않았다. 홍차향과 맛이 가득 담긴 그러나 우유의 고소함도 잃지 않은 밀크티는 딱 밀크 반 티 반이다. 평소 티도 흰 우유도 그리고 밀크티도 좋아하는 취향을 완벽히 저격한 맛. 타이 티는 명사수가 분명하다.
밀크티 전문점도 아닌 식당에서 마시는 밀크티가 이 정도라니 놀랐다. 이후 카페에서도 밀크티를 몇 차례 주문했다. 타이 티 맛의 평균을 알아내고 싶었다.
식당들과 다르게 간혹 카페에서는 당도를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물어볼 때마다 '미디엄'을 외쳤다. 워낙 기본적인 레시피에 홍차가 진하게 들어가서 미디엄을 말해도 생각보다 달지 않다(한국에서는 당도 0에 마신다. 한국 밀크티는 당도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훅- 달아진다).
십일월 말에도 오전부터 해가 쨍-해 살 타기 딱 좋은 태국 날씨 속에서 뽈뽈 몇 시간을 걷다가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밀크티를 마시면 그저 좋다. 모든 게 적당할 때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가격도 비싸야 칠십오 밧. 한국 돈으로 이천칠백 원 정도다. 정말 모든 게 딱 좋지 않은가.
걸어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은 태국 사람들은 밀크티에 진심이다. 편의점에도 밀크티 제품이 많이 진열되어 있고 밀크티 티백도 유명하다. 노상 트럭에도 밀크티를 파는 트럭들이 곧잘 보인다.
여행하면서 카페와 식당들이 밀크티를 기본적으로 보유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밀크티는 대만 음료라고 생각했던 짧고 얕은 지식이 확장됐다. 여행이 또 한 번 나를 넓은 곳으로 데려왔다. 그것도 가장 좋아하는 음료인 밀크티 세상으로 말이다.
TMI. 이 글도 밀크티를 마시면서 쓰고 있다. 디지털노마드들의 성지 카페라는 이 카페에서도 Thai tea라는 이름으로 밀크티를 판매하고 있다. 당도는 역시 미디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