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이는 윤슬 Nov 29. 2023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생각보다 별로일 수도

어느 도시나 여행 스타일이 결정적이다

치앙마이를 오기 전, 내가 이곳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한 달 살기의 성지' 그리고 '디지털노마드들의 베이스캠프' 뿐이었다. 특히 치앙마이에 오는 여행자들을 대체로 한 달을 머물고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앙마이는 대표적인 장기 여행지다. 실제로 치앙마이 쿠킹클래스에서 만난 한국인도 친구와 한달살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이렇게 장기여행자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 곳도 처음인 것 같다.

시간은 분명 빠르지만 해외에서의 한 달은 길다. 뭘 해야 할지 매번 선택해야 직성이 풀리는 여행자에게는 특히 그렇다. 

치앙마이에서 구일째 보내고 있는 지금, 치앙마이 한달살이 어떨 것 같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잘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치앙마이 한달살이가 전혀 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치앙마이에 있으면서 '여행 스타일'의 중요성을 한껏 체감하고 있다. 치앙마이는 복잡한 듯 느린 도시다. 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 좁고 울퉁불퉁한 인도와, 부재에 가까운 횡단보도와 신호등. 첫날에는 치앙마이가 참 복잡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 빼고는 정말 모든 게 차분하더라. 카페와 골목길 그리고 사원의 분위기는 대체로 잔잔하다. 식당 분위기들도 대체로 느긋하다. 이번에 치앙마이를 온 이유였던 이펭축제를 제외하면 치앙마이 내에 여행지도 그리 많지 않다. 사원들과 야시장 그리고 주말 마켓... 말고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원들도 하루 이틀이면 다 볼 수 있다. 야시장은 저녁을 안 먹는 나에게 선데이 마켓을 제외하면 딱히 흥미로운 부분이 아니다. 주말 마켓도 하루 반나절만 시간내면 모두 볼 수 있다. 이걸로 여행지는 끝. 

하루 이틀은... 아니 사실 하루도 못 참는다. 갈 곳 없는 심심한 순간이 칠일차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노트북이 없었으면 해야 하는 일이 없었으면 그리고 이펭축제가 아니었으면 난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 특히 이펭축제 기간이었던 이틀 덕분에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경험주의자인 여행자에게 치앙마이는 심심하다. 매일 뭐 할지 고민하면 일단 '할 게 없음'으로 시작해야 하는 도시다. 이런 곳에 만약 내가 한 달 살이를 결심하고 왔다면? 중도포기했을 거다.


이제 두 번째 나라에 왔으면서 세계여행을 하며 느낀 점에 대해 언급하긴 머쓱하지만, 하루하루를 더할수록 여행스타일에 맞는 도시 그리고 기간 선택이 생각보다도 많이 중요하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호주 시드니는 그런 의미에서 잘 맞았다. 스카이다이빙도 해야지 바다도 가야지 페리도 타야지 미술관도 가야지... 이곳저곳 갈 곳도 많고 도심이라 눈에 보이는 호흡도 치앙마이보다 빨랐다.

반면에 치앙마이는 눈에 보이는 것도 여행지 개수도 여백의 미에 가깝다. 일주일 넘게 지내기에는 마음에도 일정에도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상이 계획형이었던 내가 이 여유를 온전히 즐겼을 리가 없다. 칠일차부터는 '다음 날 뭐 하지' 검색하면서 저녁을 보냈다. 중간에 이펭축제가 껴 있지 않았다면 진작에 방콕으로 올라갔을 텐데 또 하이라이트가 애매하게 여행 말미에 들어가 있어 도시를 옮기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치앙마이 여행 자체가 안 좋은 기억이 됐냐. 그건 또 아니다. 

인생 풍경 중 하나가 된 이펭축제와 생각보다도 규모가 컸던 타페 문 야간 행렬.

자화자찬하며 먹고 요리하고를 반복했던 쿠킹클래스.

치앙마이 여행은 먹고 먹는 거구나-하며 감탄했던 블루누들의 갈비국수와 밀크티.

디지털노마드들의 일상을 슬쩍 볼 수 있었던 카페들.

무엇보다 치앙마이만의 따뜻한 색채가 있다고 생각한다. 뭐라 한컷 규정할 수는 없지만 골목길의 풍경과 숙소 맞은편에 있는 사원 등 걸으면서 봤던 모든 풍경의 온도가 높았다. 

심지어 현지분들의 마음도 따뜻했다. 

온 걸 후회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길 참 잘했다. 


다음번에 혹시 치앙마이를 온다면 짧고 굵게 3박 4일 압축해서 살짝 빠른 호흡으로 여행하고 싶다. 3박 4일이 나에게 딱 맞는 치앙마이 여행 방법이다.


TMI. 이쯤 되니 도시가 아닌 곳들은 살짝 타이트하게 기간을 잡아야겠구나-싶다.



▼ 윤슬이 운영하는 국내외 뚜벅이여행 뉴스레터 <뚜벅이는 레터> 구독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라도 인생 여행지가 되어 다행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