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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Mar 03. 2020

해외출장도 다니고 좋겠다

여행은 내 돈 주고 가는 게 최고다

여행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보니 출장-개인여행-휴가-출장-개인여행... 의 루트로 1년이 채워진다. 이 중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은 댓글을 불러오는 것은 단연 '출장'. 그중에서도 해외출장이다. 

"와, 좋겠다!"

"공짜로 해외도 가고. 나도 데려가~"

"신의 직장이네."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듣는 소리다. 아니라고 숱하게 말해왔지만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해외출장을 바라볼 때는 뒤에 두 글자 '출장'보다 '해외'에 눈길이 가는 것은 애초에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외출장을 다녀오면 항상 동일한 생각이 든다.

'내 돈 주고 다시 한번 또 가야지!'

항상 도시는 좋았지만 출장은 그다지-였는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하도 오래 쥐고 있어 구깃구깃해진 종이 쪼가리와 함께 동행하는 누군가를 인솔해야 하니까. 내가 갔던 출장은 모두 인솔 출장이었다. 두 분의 에디터를 인솔하며 현지에서 문제없이 에디터들이 사진을 수급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이다. 큰 틀로 보면 크게 할 일은 없다. 패키지 상품처럼 차량을 타고 다니고 현지 가이드가 있어 의사소통 문제도 없다. 그런데 왜 그다지-였냐고?

어느 출장의 첫날이었다. 어쩌다 보니 일정이 늦게 끝나 오후 11시가 넘어 숙소에 들어왔고 모두가 지친 상태였다. 바로 씻을 준비를 하려고 객실로 들어왔는데 잠시 뒤 울리는 벨소리.

"캐리어가 안 열려요~!"

곧장 에디터의 객실로 가보니 당황한 웃음을 짓고 있는 에디터였다. 보아하니 자물쇠를 열쇠로 여는 형태의 캐리어인데 열쇠가 낡은 까닭에 자물쇠와 맞물리지 않는 문제였다. 대략 난감했지만 일단 프런트 앞에서 바디랭귀지를 했다. 공구가 있나요? (공구를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지금도 신기하다. 절박함의 위력.)

공구가 없다는 답을 듣고 한참 당황스러워하다가 다행히 현지 가이드님께 연락이 닿아 가이드님이 묵는 호텔에 공구를 구해 뜯을 수 있었다. 정

변수를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이 날 다시 객실에 들어가 가족들이 있는 단톡 방에 얘기했다.

'빨리 집 가고 싶다ㅠㅠ' 


다른 이유로는 타인을 만나면 무조건 그럴 수밖에 없지만 성격이 다 다르다. 고집이 센 성격일 수도 있고 친화력이 엄청날 수도 있고 새침할 수도 있다. 셋이 가도 어쩜 성격이 다 다를까?

그러다 보니 인솔자로서 타지에서 에디터들의 행동이나 기분을 케어하다 보면 각자의 성격을 모두 맞추는 것이 얼마나 수행인지를 알게 된다. 말이 없는 누군가에게는 먼저 질문을 건네고, 에디터 둘이 사이가 안 좋은 기류가 보이면 중간에서 풀어주려는 의도의 말을 던지기도 해야 한다. 자신의 사진에 대단히 자존감이 높은 에디터라면 옆에서 장단을 맞춰주며 "와 역시 에디터님 신의 손!" 정도는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상당히 어려웠다. 워낙 평소에 말도 표정도 없는 편인 아싸(?)여서 억지로 하는 모든 순간이 피로였다. 정신적으로 피곤한데 일정까지 바쁘니 고통.... 어쩌면 나는 여행과는 잘 맞는 사람이지만, 여행업계와는 참 안 맞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일정을 다 마치고 객실로 들어오면 평소 개인 여행을 다녀오면 하지도 않는 '오자마자 기절하기'를 행한다. 1년에 몇 번 없기에 천만다행이지 뭐야. 역시 여행은 내 돈 주고 가는 게 최고다. 자유로움의 극치!


인솔자였던 나뿐만 아니라, 에디터분들도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낯선 타지에서 하루 종일 셔터를 수백 번을 누르니 겉으로는 프로페셔널 보여도 속은 피곤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렇게 출장은 누가 가든 여행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누가 해외 출장을 간다고 얘기해도 좋겠다고 하지 말자. 수고가 많다고 해주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답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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