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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Feb 19. 2020

이 좋은 것을 왜 이제 했을까

낙산사에서 1박 2일, 템플스테이

낙산사에서 1박 2일, 템플스테이

사찰에서 반나절 혹은 그 이상을 머물며 불교의 문화를 경험하고 마음을 비우는 템플스테이. 단어 안에 내가 템플스테이를 가고 싶은 이유가 다 있었다. 그럼에도 무슨 이유인지 몇 년을 미루다가 이번에 새해 초심이라는 추진력을 얻어 결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반달 뒤 구름 가득한 날, 낙산사로 향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템플스테이를 왜 이제 했을까- 미뤄온 지난 몇 년간의 네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좋은 것뿐이었다. 지인들에게 추천을 당당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도 정신도 차곡차곡 쓸고 닦고 정리한 1박 2일이었으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본론과 같다.




승복만한 옷이 없구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시작 전, 실감이 난 순간은 딱 두 번 있었다. 입장료를 내지 않고 "템플스테이 왔어요~!" 했을 때 그리고 승복을 받았을 때다. 그중 복장이 유독 인상적이었는데 옷을 받았을 때는 딱히 큰 기대는 없었다. 옷이 옷이려니.

그런데 웬걸? 수면잠옷보다 편한 바지는 처음이었다. 두께는 얇은 솜이불 같으면서도 알라딘 바지처럼 펑퍼짐한 모양이 바지마저 심신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이 바지를 입고 잠도 잘 자고 떠나는 순간까지 미련이 남아 어제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실내복으로 입게.)

휙휙-다리를 들어보며 바지의 편한 느낌을 즐긴 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108배의 포인트는 108에 있지 않다

오후 6시부터 6시 30분까지 저녁예불을 듣고 계속해서 홀로 목탁을 두들기며 기도하시는 스님 뒤에서 조용히 108배 염주의 재료를 바닥에 깔아 두고 108배를 했다. 108배는 내가 이번 템플스테이에서 가장 큰 의미를 둔 경험이었다. 절을 108번이나 하다니! 대단한 도전인걸?

힘들어도 꼭 완수하리라 굳게 다짐했던 일인 만큼 절하는 방법도 열심히 들었는데 알고 보니 108배는 한번 절할 때마다 한 개의 문장을 읽으며 절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총 108개의 문장을 읽으며 절을 하는 거다. 108배를 할 때 그 책자를 펴니 주옥같은 문장들이 잔뜩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뜻의 문장들이 있었다.

[나의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절합니다]

[타인을 돕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하며 절합니다]

[삶이 건강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마음으로 절합니다]

이 108개의 문장대로 살면 진짜 전지전능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완벽한 사람의 비결들이 가득했다.  

배운 대로 절을 할 때마다 읽었다. 염주의 줄에 한 개의 구슬을 넣고 문장을 읽고 절하고 다시 구슬 하나를 넣고 문장을 읽고.

이 108배가 심상치 않음은 80번 정도 했을 때 인지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절을 몇 번째 하는지 세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문장의 의미에 집중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도와달라는 간절한 마음, 지켜봐 달라는 부탁의 마음이었다.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니 종교의 여부를 떠나 절을 하다 보면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운동처럼 괴롭지 않았다. 집에서 하는 15분짜리 운동은 IC거리면서 하면서 30분도 넘게 한 듯한 108배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곧잘 했으니. 108배는 108번의 절이 포인트가 아니었구나! 그래서 후기에 108배가 템플스테이의 꽃이라 적혀있었나 보다.

덕분에 108배 염주를 완성할 수 있었다. 신발을 신고 나서는데 비가 내리기 직전의 세찬 바닷바람이 상쾌했다.


관광객 없는 사찰에서의 밤 

1박 2일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풍경은 샤워까지 마치고 숙소였던 취숙헌 대청마루에 앉아 바라본 키다리 나무들의 흔들림이 아니었을까. 수많은 관광객들의 소리가 모두 빠지고 거센 파도소리와 종소리만 들리는 낙산사의 저녁 색감은 온통 흑빛이었다. 바다도 검은색 흙도 검은색 나무도 검은색. 모든 것이 그림자 같았던 공간의 한 곳에 앉아 어두움의 소리를 듣는 시간은 짧지만 강렬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키가 컸던 나무는 검은 바람에 휘청휘청 술 취한 것처럼 흔들렸고 소리는 스스스슥- 마치 대나무 잎이 부서지는 소리 같았다. 

일출은 보기 글렀구나-아쉬움을 예고하는 소리이자 그 대신 이걸 줄게-하며 내민 풍경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1박 2일만에 가져가는 것치고는 이미 많이 받았어.

아이러니한 것은 많이 받았는데 가벼워졌다. 많이 덜어내고 어떤 것은 비워낸 시간이었다. 덕분에 푹 잤다.


마음은 장소나 환경에 따른 것이 아니다

스님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선택이었지만 당연히 손을 들었고 나 또한 스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는데 여러 조언 중 가장 '아하!'싶었던 말씀은 스님으로써의 생활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이 되고자 찾아오지만, 다시 속세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숱하게 많다고 한다. 속세를 떠나올 때는 템플스테이처럼 매일 여유롭고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마음을 비우면서 살 것을 생각하면서 오지만, 스님도 공부와 주어지는 역할, 업무, 고된 수행이 있음을 몸소 경험하면 오해였다는 것을 알고 돌아간다고 한다. 스님으로써의 삶도 다른 면에서 힘들다는 사실을 경험과 팩트로 들으니 일말의 고정관념마저 와장창 깨졌다. 

스님도 쉽지 않구나. 많은 것을 견뎌내야 비로소 무언가를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속세에 사는 사람들의 인생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차담을 나누었던 스님은 정신이 어지러울 때마다 붓글씨를 쓴다고 하셨다. 30장쯤을 써야 반듯한 글씨가 일정하게 나온다는 이야기에 그저 힘든 순간마다 어떻게 해석하고 풀어가느냐의 차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모두가 동일하구나.

말씀을 듣다 보니 안도감 혹은 희망이 보였다. 스님도 그런데 나는 오죽하겠는가. 

단지 붓글씨를 쓰며 정신을 정리 정돈하는 스님처럼 더 나은 네가 되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




템플스테이를 마치기 전부터 이미 올해 한번 더 와야겠다고 생각한 것을 보면 웬만한 여행만큼 마음에 쏙 들은 것이 분명하다. 낙산사가 가을에 오면 좋다던데 올 가을에 한번 더 이 순간들을 다시 보기 해야겠다. 


템플스테이는 사찰마다 차이가 있지만, 여러 종류로 나뉘어 있습니다. 낙산사의 경우 휴식형과 체험형이 있고 차이는 프로그램 참여가 선택인지 필수인지-가 가장 큰데요. 저는 휴식형을 선택했지만, 체험형에 포함된 옵션을 했고, 새벽예불을 제외하고는 모두 참여해서 거진 체험형이 되었네요. 휴식형은 4만 원, 체험형은 5만 원입니다.


▼낙산사 템플스테이 정보 자세히 보기

https://blog.naver.com/dbstmfgustj/22181143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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