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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Feb 11. 2020

우울할 때 저는 이곳으로 떠났어요

우울할 때 다녀왔던 국내여행지들에 대한 생각

여행지를 추천받기가 쉬워진 요즘이다. SNS 피드에는 매일같이 '꼭 가야할 여행지 TOP5' 같은 여행지 소개가 올라오고, 초록색 검색창에 '겨울여행지'만 검색해도 수 많은 결과가 쏟아진다. 집 밖을 나가는 용기만 있다면 여행을 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모든 추천이 도움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바로 '우울할 때'. 여기서 말하는 우울함은 단순히 '짜증'의 수준이 아니다. 매사에 의욕이 0이고 바닥을 치는 자존감. 자존감이 없으니 주변의 눈치를 자주 보게 되고 그러는 자신이 초라해보이는 것의 반복을 행하는 그런 우울함을 말한다. 우울한 사람을 위한 여행지 추천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대체로 여행 추천은 '설렘', '행복' 등의 단어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이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추천해보고자 한다. 여행을 오랫동안 사랑해온 '여행덕후'이지만, 그런 나에게도 그런 우울함이 찾아왔기 때문에. 경험자가 추천하는 국내여행지.

 국내로 한정하는 이유는 해외까지 갈 여력이 없을만큼 휴식이 필요한 우리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속초

초가 시끌벅적한 곳이라 생각했다면 편견이다. 중앙시장의 북적임을 제외하면 속초는 유명함에 비해 굉장히 조용하다. 특히 1956년에 개점한 이래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동아서점'과 TV프로그램에 나오면서 유명해진 '문우당서림'의 영향을 받아 북스테이 게스트하우스까지 생겨 숙소까지 그런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한다면 아침에 눈을 뜬 직후부터 잔잔한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햇살이 가득한 영금정 앞바다의 윤슬과 그 옆에 길쭉하게 늘어진 항구의 길은 오직 바닷소리와 뱃소리를 들으며 산책을 하기에 딱. 빨간 등대가 있는 항구의 끝을 갔다 돌아오면 바다가 주는 위로를 경험할 수 있다. 

자연 외에도 공간이 주는 위로도 존재한다. 카페 '칠성조선소'는 SNS에 등장한 유명한 카페이지만, 실제 조선소로 운영했던 공간을 최대한 유지하며 운영하고 있어 많은 인원을 수용해도 여유로울 만큼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 여유롭게 야외의 나무의자에 앉아 바로 앞의 바닷소리를 들어보자. 지금도 새로 태어난 배가 바다로 나갈 것만 같은 힘찬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카페를 방문한다면 '나는 속초의 배 목수입니다'라는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칠성조선소에서 일한 목수 두분의 이야기를 쓴 책으로 칠성조선소의 스토리를 접할 수 있고 이 공간이 얼마나 많은 따뜻함을 품고 있는지 알게 된다.

무엇보다 속초는 뚜벅이에게 더 행복한 곳이다. 주요 목적지가 모두 도보거리인 곳이기에 정처없이 걷고 싶거나 사람과 부딪혀야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지 않을 때 가면 가장 최적의 공간이다.




제주도

제주도를 추천하면 대체로 관광지 혹은 카페다. 하지만 제주도 한달여행을 다녀오고 사계절 모두 육지와 왕래를 해본 여행자로써 우울함을 경험한다면 그런 곳 보다는 '마을'이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제주도는 섬이라지만 마을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양보다 중요한 것은 마을마다 가지고 있는 색감과 풍경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는 한달여행을 하면서 거의 모든 마을을 골목골목 걸었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관광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제주도의 진가를 발견해서 한번에 2시간반씩 마을에서 마을을 걷기도 했다. 마을마다 밭에서 키우는 작물이 달라 밭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눈으로 이해하고 마을 주민들이 다같이 그 밭에 줄지어 품앗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지붕의 알록달록한 색깔, 그 속에 숨겨져있던 감성 가득한 소품샵 등 마을은 주민들이 사는 곳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내재되어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그것들이 주는 편안함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우울함의 원인을 잘 모르거나 급한 해결보다는 우울함 속에서 여유롭게 빛을 찾고 싶을 때에는 날 좋은 제주도의 마을 속으로 들어가보자. 

필자 PICK 제주도 마을 : 종달리. 종달리는 마을 골목골목이 매우 꼬불꼬불해 처음에는 내가 어디쯤 와있는지도 예상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걷다보면 그 예상하기 어려움이 걷는 시간 외의 재미를 준다. 심지어 작은 연못같은 철새도래지도 있어 보기 힘든 새들도 마음껏 볼 수 있다. 마을 안에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있다는 점은 봐도봐도 신기하다. 




경주

누군가에는 추억의 수학여행지, 누군가에는 '아 그 황리단길~'로 유명한 경주.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온 적이 있는 만큼 오랜 시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식상하게 느껴진다면 한국말은 끝까지. 도피가 목적이었든 치유가 목적이었든 그늘진 마음으로 경주를 왔다면 일몰 시간에 첨성대 근처에 있는 것을 꼭 기억하자. 전국에서 가장 한국적인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첨성대에 조명이 들어오면서 그 뒤로 매일 다른 무늬로 붉제 지는 노을은 아무리 추워도 자리를 뜨기 힘들다. 그늘진 마음에 불을 지펴 갑자기 확 밝아지는 그런 기분이랄까. 위로를 받다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리고 경주는 길들이 워낙 넓어 사람이 많이 가는 곳이라도 그렇게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조금 부지런해지더라도 황리단길을 인적이 드문 때에 걷고 싶다면 오전8시에 나가보자. 가게들이 문을 열고 닫고의 문제가 아니다. 필자가 직접 경험한 인사이트로 8~9시에 황리단길에 있으면 이렇게 고즈넉하면서도 힙한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곳이었나-신기하다. 




가끔은 사람이 아닌 것에 더 위로받는다

여행이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닐까싶다. 언제나 그랬듯 모든 것들이 그대로 움직이지만 찾아간 사람의 마음이 어떻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느껴지는. 그 '다름'이 부정적인 적은 없는. 그래서 혹시 지금껏 즐거움을 느끼러 여행을 갔다면 마음이 그 때와 다르더라도 한번 떠나보자. 여행지는 결코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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