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여행을 설계하는 이유
여행 갈 때는 무조건 계획을 세우는 편이다.
지금도 자주 쓰는 메모 앱에는 과거의 여행 계획들과 미래에 떠날 여행에 대한 정보가 가득하다. 준비물, 예산, 각 일정들까지. 메모장 하나만 열어도 그 여행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꽤 체계적으로 여행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메모 앱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여행 계획과 관련된 메모가 몇 년째 계속 누적되고 있으니 계획적인 여행을 다녀온지는 오래됐다.
그럼 항상 계획대로 여행하고 오느냐고 묻는다면 물론 막상 떠나면 계획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정이 촉박해 다음날로 미뤄지기도 하고, 날씨 등 여러 변수가 아예 못 가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계획을 굳이 짜는 이유라면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미리 어떤 여행지들이 있는지, 숨은 맛집은 어디인지, 기념품은 뭐가 유명한지 어디서 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등 최대한 여행에 있어 당황스럽거나 아쉬운 구석은 만들고 싶지 않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엇 뭐야 여기 안 가봤어!', '이 기념품은 여기가 더 예쁜 것이 많았네-'와 같은 순간이 있을 때 남들보다 더 크게 실망하는 편인 탓도 있고, 가서 그렇게까지 당황할 필요가 없는 것에도 머릿속이 하얘지는 나의 성격 탓도 있다. 그런 것들을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이불 킥으로 소장하는 편인지라 여행에 대한 기억 자체가 자칫 부정적으로 남을 위험이 있다.
무계획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다. 좀 더 가볍게 가볼까 하는 마음에. 그런데 가볍지 않더라. 하루 전날, '내일 어디 가지?' 조사하는 시간도 여행의 일부인데 무언가를 찾아보는 데에 쓰는 것이 내게는 썩 좋지 않았다. 밀린 방학 숙제를 개학 하루 전에 벼락치기로 하는 느낌이랄까. 마음이 불편해서 관뒀다.
종합해보면 여행이 완벽했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크기가 남들보다 큰 편인 것 같다. 어디로 떠나는 여행이든 결코 가벼운 여행은 없으니까. 간절함 끝에 도착한 그곳이니까 최대한 그에 비례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다.
무계획은 무계획만의 장점이 있고 계획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장점을 더 우선시 두느냐의 차이일 뿐.
앞으로도 메모 앱에는 수 많은 여행 계획들이 누적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