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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an 13. 2020

프라하 크리스마스 마켓을 드디어 실제로

사진으로만 봤던 무언가를 실제로 봤을 때

여행을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이런 목표 한 번쯤은 생각해본 적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오로라 보기라던가- 해외에서 한 달 머물기, 로드 트립 떠나기- 좀 더 크게는 세계일주 정도? 이런 목표는 대개 그 규모가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인생 전체를 통틀어 버킷리스트로 둔다. 마치 '언제 밥 한번 먹자'처럼.
'유럽 크리스마스 마켓 보기'가 나에겐 그런 것이었다. 죽기 전에 한 번은 가겠지 뭐.


누가 유럽은 안 춥다고 했어!

프라하의 12월은 롱 패딩을 입고도 추웠다. 아무래도 하루 종일 밖에 있다 보니 체감온도가 계속 낮아지는 모양이었다. 원래도 차가운 발은 얼어버린 지 오래였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느라 주머니에 넣지도 못하는 손도 감각이 없었다. 프라하에서 본 한국인들은 모두들 인생샷을 남길 생각에 코트를 입고 계시던데 건강이 우려될 정도였다. 그렇게나 추운 프라하에서의 둘째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내 위주로 돌아다니지 않았던 건 오직 '크리스마스'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 D-3. 11월 말부터 일찍이 반짝이기 시작했다는 프라하의 거리들은 온통 메리 크리스마스였다. 건물을 트리라고 생각한 것인지 황금빛 조명들이 여기저기 걸려있었고 노란 리본이 건물 모서리에 달려있는가 하면 거리의 나무, 하늘 위에 까지 온통 알록달록 장식 천지였다.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을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 낮에도 이렇게까지 빛날 수 있구나. 어느 거리에서든지 캐럴도 실컷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버전의 캐럴들이 있었던가-싶을 정도로 매번 독창적인 캐럴들을 귀에 담을 수 있었고 나중에는 스스로도 흥얼거리는 경지에 올랐다. 어쩌면 이런 분위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크리스마스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프라하의 크리스마스는 평범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프라하의 겨울은 낮이 굉장히 짧았다. 한국의 겨울도 낮이 짧아 6시 퇴근길이 캄캄해 아쉬웠는데 프라하는 4시부터 해가 지기 시작하더라. 그럼에도 한국처럼 아쉽지 않았던 것은 역시 반짝이는 조명들 때문이었으리라. 낮부터 빛나지만 역시 절정은 해가 진 뒤! 실제로 해가 지면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올드타운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 가는 길은 내가 길을 찾아가는 것인지 앞사람의 등을 보다 보니 도착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이 많은 사람들은 낮에는 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아직도 그 답을 잘 모르겠다.

소매치기에 특히 주의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에 매고 있던 크로스백을 손으로 감싸고 가면 올드타운 광장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과연 큰 규모답게 광장 영역에 들어가지 않아도 환상적인 트리와 누가 봐도 크리스마스스러운 마켓 지붕들을 볼 수 있었다.

마켓 안을 둘러보려다가 멈칫. 아 전망대를 먼저 가자!

천문 시계탑 옆 인포메이션으로 들어가면 전망대로 갈 수 있는데 그 전망대에서 보는 올드타운 크리스마스 마켓 뷰가 가장 크리스마스 마켓 전경을 예쁘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미리 조사해간 만큼 능숙하게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는 3층으로 갔는데 와... 우... 대기줄이 계단을 따라 늘어져 있었다. 그렇게 30분쯤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내가 무슨 행동을 취했는지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진과 같은 풍경을 보느라. 아무리 카메라로 담으려고 해도 담아지지 않는 비현실적인 황금빛 풍경이었다.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마켓과 올해 동유럽 크리스마스 마켓 트리 중 가장 예뻤다는 후기가 있었던 거대한 트리. 마켓의 빛나는 조명의 힘은 주변 건물들에게까지 닿아 외벽을 물들였다. 광장 밖의 거리의 나무들은 연말 시상식을 방불케 하는 눈부신 드레스를 입었는데 그 모습이 전망대에서 보는 뷰의 어느 한 구석도 꼼꼼히 황금빛으로 채우겠다는 의지로 보여 기특할 정도였다.

진짜 이걸 보다니. 한국에서도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사진으로 많이 봤던 뷰였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멋지게 담아냈고 그걸 보면서도 꿈에 나올 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조차도 착각이었다니. 이때의 풍경을 정확하게 전달할 문장들을 한국에 와서도 수없이 고민해봤지만, 아무래도 찾기 어려울 듯하다. 때때로 언어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전망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두가 압사당할 것 같은 붐빔을 인내할 정도로 감동받았다는 사실이다. 전망대의 통로는 사람 한 명이 지나갈 딱 그 정도 넓이였는데 그 통로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전경을 보는 사람들과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지나가려는 사람들로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그럼에도 "와우~", "오우"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던 것을 보면 그 붐빔 속에서도 사람들은 2019년 12월 22일 프라하의 어느 밤을 충분히 즐겼던 것 같다.

그렇게 스스로 먼저 등 돌리고 싶지 않았던 풍경을 억지로 뒤로하고 크리스마스 마켓 안으로 들어서니 전망대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꼭 많이 파셨으면 좋겠는 열정적인 대장간 아저씨, 바쁘게 굴러가고 있는 뜨르들로, 사고 싶은데 달 곳이 없는 그림 같은 트리 장식들, 마켓에 가면 누구나 기본으로 사 마시는듯한 펀치와 핫 초콜릿, 피자와 수제버거까지 그야말로 온갖 것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프라하 곳곳에 상대적으로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들이 열렸지만 역시 메인답게 올드타운 마켓이 가장 구경할 거리가 많았다.

한쪽에서는 무대가 있어 시간대별로 다양한 크리스마스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온 터라 배가 불렀지만 무언가를 먹어야만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뜨르들로 가게 앞에 줄을 섰다. 70 코루나를 내고 받은 갓 나온 따끈따끈한 오리지널 뜨르들로였다. 설탕 외에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뜨르들로는 프라하에서 먹은 뜨르들로 중 가장 겉바속촉의 맛이었다. 아! 프라하 뜨르들로 맛집은 여기었구나! 연말에만 열리는 맛집을 방문했다는 사실에 흡족해하며 뜨르들로의 주름을 따라 빵을 뜯어먹었다.

감히 확신하건대 프라하의 모든 뜨르들로 가게를 통틀어 가장 맛있다.
물론 가게 주변 분위기도 통틀어 최고!

뜨르들로를 받아 들었을 때부터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던 비조차도 낭만적으로 느껴지던 그 날. 크리스마스 3일 전이었지만 내가 선물 받은 낭만은 디데이 못지않았다. 죽기 전에 한 번은 가겠지-했던 것을 몇십 년이나 앞당긴 날이었고, 당긴 대가는 마켓 지붕 아래서 먹은 뜨르들로만큼이나 달달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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