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처음 가본 것도 아닌데 처음으로 시차적응이라는 것을 제대로 경험했다. 남들이 시차적응 에피소드를 꺼내 들면 '왜 잠을 못 자지?' 갸우뚱-했을 정도로 어디서든 기댈 곳만 있으면 꿈도 안 꾸고 잘 자는 나이기에 이번 여행도 준비할 때부터 시차적응의 'ㅅ'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나는 감기 같은 거 안 걸려"하면 꼭 걸린다는 말처럼 너무 단언한 나머지 진짜 시차적응이라는 병에 걸려버렸다.
시차적응과 싸운 기간은 총 4번의 밤이다. 체코 프라하에서는 한 번도 새벽에 안 깬 날이 없었다. 첫날 밤부터 이틀간은 새벽 2시에 눈을 떴고, 그다음 날에는 새벽 4시, 또 다음날에 새벽 5시를 찍고 나서야 비로소 유럽의 시간에 리듬을 맞출 수 있었다.
시차적응이 힘든 것임을 깨달은 때는 새벽 4시에 일어난 셋째 날, 오후 6시부터였다.
'와. 피곤해!' 그 날부터 오랜만에 밤을 새우고 난 뒤의 멍-한 기분이 들었는데 해까지 일찍 지니 급격히 졸리기 시작했다. 잠깐 숙소에 들어가서 쉬다가 나와야지. 분명 잠깐 누워있다 다시 나올 생각을 하며 들어갔는데 그 날 나는 다시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절정은 역시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야간열차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식당이나 카페들도 문을 닫았고 밖에는 비가 오니 일찍이 중앙역에 왔는데 너무 일찍 온 것인지 아무리 앉아있어도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지겨워서 허리를 접었다 폈다-하다 보니 잠도 오는 것 같고. 캐리어 손잡이를 잡고 상체를 기대 잠깐 잤다가 왜 있는지 모르겠는 피아노를 취객이 뚱땅뚱땅 대는 소리에 깨기를 반복하며 열차가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더 야간열차에 감동했던 것일까?
매일 새벽에 깬다고 SNS에 올리니 여행/출장을 많이 다닌 지인이 하루 날 잡고 밤을 새우거나 술을 마시라는 답변을 달아주었다. 오호-그래 부다페스트에서 시도해볼게!
부다페스트에서는 꼭 제 때 자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어 새벽 2시까지 한인민박을 함께 쓰는 사람들과 와인과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정말 그 친구 말대로 그 날부터 나는 유럽의 시간에 완벽 적응했다. 완전 꿀잠!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이 네 명이나 되는데 코 골았으면 어쩌나 싶지만 멀쩡한 정신에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가족들도 유별나다고 생각할 정도로 평소에 잠을 금방 깊게 자는 편이라 잠 때문에 난처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때문에 이것 또한 유럽여행이 만들어준 더 새로운 경험이랄까. '잠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니 평소에 잘 자는 것에 감사하란 말이야.' 교훈이라고 하기에는 별 일 아닌 에피소드지만 여행은 종종 이렇게 소소한 교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