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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an 27. 2020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크리스마스 미사

이보다 경건하고 성스러운 순간이 또 있을까?

종교가 없다. 어릴 적에는 친구들을 따라 교회도 다녔지만 친구들이 교회를 떠나면서 나 또한 종교에 속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행 다닐 때에는 성당, 절 등의 종교 시설을 가보는데 종교심을 떠나 공간 안에 들어가면 느껴지는 고유의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분위기는 사람이 많든 적든에 관계없이 그 공간을 계속 덮는다. 그리고 나는 '분위기'라는 단어 외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들이마신다. 그러고는 마음에 안정 혹은 참았던 무언가의 폭발을 경험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만난 종교 시설에서의 갖게 된 그 수많은 '경험'들이 100 중에 50이라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우연히 가게 된 성 이슈트반 대성당에서의 경험은 500쯤 됐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숙소 체크인과 환전을 빼면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성당을 보려고 간 것이 아니라 대성당 앞 광장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러 간 것이었다. 마켓을 둘러보며 '우와 먹을 거 많네!? 프라하랑 음식도 다르고 신기하다...'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악기 소리가 들렸고 뒤를 돌아보니 성당에서 종사하시는 어떤 분께서 나팔 같은 악기를 크게 불고 있었다. 현지인으로 예상되는 분들이 우르르 성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소리에 이끌린 것인지 사람들의 발걸음을 보니 왠지 가고 싶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도 그렇게 성당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성당 안은 엄청난 규모였다. 겉으로 보기에도 대성당이었지만 실제로 들어가서 보는 규모는 외관과는 별개의 놀라움이었다. 그 큰 성당 안에서는 미사가 진행되려는 듯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그제야 오늘이 크리스마스 미사 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에 이걸 듣게 되다니. 해외에서 크리스마스 미사라니. 심지어 이 대성당에서. 연말에 받은 모든 행운 중 가장 큰 행운이었다. 그 진귀한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지만 사진을 찍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하여 카메라는 목에 걸었다. 쉽게 오는 날이 아닌 만큼 온몸으로 집중하고 싶기도 했고.


미사에 대해 무지한 데다가 자막과 성가대 노래 가사도 헝가리어로 나오기 때문에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아예 알 수 없었지만 1시간도 넘는 시간 동안 그 어떤 행위보다도 성대하게 모든 것들이 행해졌다. 성가대의 목소리와 오르간으로 시작되는 미사의 시작은 그야말로 소름. 실제로 소리를 듣자마자 소름이 오소소-돋았을 정도로 대성당을 가득 채우는 소리는 이상적일 만큼 아름다웠다. 대성당들을 갈 때마다 봤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에서 나오는 소리가 이렇게나 웅장하고 깊이가 있는지도 처음 알았고. 이것만 해도 이미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는데 본격적으로 미사가 시작되니 그 임계점을 또 훅-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눈 앞에 보이는 모든 행위가 진지함을 넘어 성스러웠다. '성스럽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체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때 직감했다. 내가 부다페스트에서 살고 있었다면 이 성당을 다니고 있을 것이라고. 저절로 손이 모아지고 간절함이 생겨 올 한 해 꼭 이루어졌음 하는 것을 기도하고 내 상태를 고백했다. 성당에서 한국어로 기도하는 사람은 나뿐일 것 같아 부다페스트에서 기도하는 한국인의 바람을 신이 들어줄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부를 떠나 이 공간에서 기도를 안 드리고 나간다면 분명히 후회할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숙소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오늘 대성당 크리스마스 미사 보신 분 계시냐고 물었는데 숙소에 나 혼자였다. 크리스마스 마켓보다 미사를 본 것이 더 인상적이었을 정도로 역대 여행 중 최고의 기억이 그렇게 갱신됐다. 혹시 크리스마스에 성당이 있는 해외 어딘가를 갔다면 꼭 가보자. 종교가 무엇인지를 떠나 간절한 믿음과 자축이 그에 맞는 공간에서 펼쳐질 때 실제 신을 실제로 본 것만큼이나 놀라운 무언가를 경험하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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