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랜선 여행에 대한 이슈 때문인지 TV에서 여행 예능 재방송을 유독 많이 해주고 있다. 덕분에 재미있게 보던 프로그램들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크로아티아를 배경으로 한 '꽃보다 누나'다. 반가움에 몇 화를 챙겨봤는데 크로아티아를 다녀온 이유가 이 프로그램이었으니 자연스레 외장하드 속에 묵은지처럼 파일 이름 한 번 안 바뀌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진들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보정도 안 했지.'
그렇게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파일을 5년 만에 열었다.
과장을 보태지 않아도 충분히 판도라의 상자였다. 어쩜 사진을 이렇게도 못 찍었는지. 밝기/구도/초점 뭐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들에 이마를 짚었다. 2015년의 나는 크로아티아에서 뭘 담으려고 했던 걸까? 그 시절 나만의 느낌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컨셉이었을까. 선명해야 할 곳이 흐릿한 사진이 한 두장이 아니니 콘셉트가 아니고서는 2020년의 나는 해석이 불가할 수밖에.
안갯속에서 2015년의 나는 살리지 못했지만(살릴 생각도 없었을지도) 2020년의 나는 살릴 수 있는 사진들을 몇 장 골라냈고 그렇게 5년 뒤에 치료할 기술이 생겨 냉동인간을 꺼낸 것처럼 수술에 들어갔다.
그렇게 나온 2015년산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첫인상
자그레브였던 것 같다. 어느 마켓
버스 타고 도시 이동 중 중간 정차 타임에 본 도시의 풍경
보정을 할 때면 보통 그때 눈으로 본 색감이나 감정들을 녹이는데 처음에는 그 기억이 명확하지 않아 보정에 난항이었는데, 그래도 직접 보고 들으며 경험할 때 가장 오래 남는다고 점차 5년 전 풍경들이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크로아티아는 햇살의 양이 많은 곳이었다. 태양의 면적이 다른 곳보다 넓게 닿는 것처럼 낮에는 도시의 온 색깔에 노란빛이 들어갔다. 주황색과 빨간색 그 어느 지점에 있는 듯한 붉은 지붕 색, 노란 외벽, 초록과 노랑 사이의 생기 돋는 자연들, 아드리아해 위에 반짝이 풀이라도 뿌려졌나 싶은 윤슬까지. 크로아티아를 설명하면서 해를 빠뜨리기에는 전부가 해였다.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의 기분이니 그때의 행복감은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뻔할 것이다.
크로아티아는 사람들도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다. 내 생일이 포함된 여행 일정 때문이어서 더 강한 기억이 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참 받은 것이 많았다. 체크인 날부터 안아주고 직접 만든 현지 음식을 기꺼이 건네었던 두브로브니크 숙소 할머니,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 어느 레스토랑 직원분들, 젤라토 사장님 등 적극적인 친절함이 여행을 더 완벽하게 해 주었다. 신기할 정도로 타국에 비해 많은 분들이 웃어준 곳이다.
크로아티아를 배경으로 한 그 프로그램에서도 현지인들의 친절함에 엄지척을 했으니 아마 객관적으로도 선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아닐까.
사진을 다시 만져보니 문득 부자 카페에서 마셨던 전설의 레몬맥주가 생각났다. 어떤 맛이었는지 명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유레카였다는 점. 한국에서 살 수 있나 검색해보니 2016년부터 수입되고 있다는데 한 번 구해봐야겠다. 2015년산 크로아티아 사진을 보면서라도 마시면 혹시 아나. 그때의 기억이 더 선명해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