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투기꾼 리버모어
천재 투기꾼 리버모어
대부분의 투자자는 단기 성과를 추구한다. 이러한 태도는 흔히 투자 실패의 원인 중 하나인 ‘근시안적 본능’에서 비롯된다. 원래 이 표현은 가까운 곳만 잘 보이고 먼 곳은 흐릿하게 보이는 시력 상태인 ‘근시(nearsightedness)’에서 유래했다. 즉,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이나 결과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 성향에 따라, 많은 투자자들은 단기 성과를 중시하며, 즉각적인 수익과 눈에 보이는 결과를 기대하고 몇 주 또는 몇 달 안에 수익을 실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이에 집착할수록 사고파는 거래에 익숙해지고, 자연스럽게 트레이딩 방식의 투자를 선호하게 된다. 트레이딩은 시장의 변동성을 활용하여 단기적인 차익을 실현하는 투자 방식이다. 주가가 매수한 가격보다 오르면 매도하고, 떨어지면 다시 매수하고, 조금 오르면 또다시 매도하는 방식이다. 고도의 전문성과 높은 위험을 수반하는 전략으로, 성공적인 트레이더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성공할 경우, 짧은 시간 안에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제시 리버모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트레이더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탁월한 투자 감각으로 엄청난 부를 일구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자 금액이 커질수록 불안감을 느끼지만, 리버모어는 오히려 충분한 자금이 있어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 투자자였다.
1877년에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졸업 무렵부터 증권사에서 주식 시세판을 적는 일을 하며 주식 시장과 만났다. 14세에 투자를 시작했고, 과감한 투자 방식 덕분에 ‘몰빵 꼬마 투기꾼(Boy Plunger)’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어린 시절부터 큰돈을 벌기 시작한 그는, 20대에는 수십만 달러, 서른 살 무렵에는 현재 가치로 약 1억 달러에 해당하는 자산을 쌓았다. 이후 1929년 대공황 당시에는 주가 하락에 베팅해 공매도를 통해 하루 만에 현재 가치로 약 3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투기적인 방식으로 투자했기에, 전 재산을 잃은 경험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의 자서전 『어느 투자자의 회상』에 따르면, 하루아침에 25만 달러를 벌기도 했지만, 한순간에 수십만 달러를 날리기도 했고, 단 2년 동안 세 차례 파산하기도 했으며, 수백만 달러를 벌고도 면화 투자 실패로 같은 액수를 날리기도 했다. 특히 1911년부터 1914년까지, 30대 중반이던 4년 동안은 가진 것을 모두 잃은 채 단 한 푼의 수익도 내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기간에 100만 달러가 넘는 빚을 지기도 했고, 투자 기회를 놓쳐 오랜 시간 회복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30대에 엄청난 부를 이뤘지만, 이후 몇 년간은 빈털터리로 살아야 했다.
리버모어가 이처럼 극단적인 투자를 반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본능적인 투자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 증권사에서 시세판을 정리하며 시장의 흐름을 몸으로 익혔고, 경험과 직감, 타고난 감각을 바탕으로 투자했다. 대량 거래를 해야 시장의 본질이 보인다고 믿었던 그는, 일반 투자자들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방식으로 승부했다. 그는 용기있는 결단력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것을 잃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강한 자기 확신이 있었다. 그는 몰빵 투기꾼이자, 본능으로 움직이는 천재적인 트레이더였다.
1929년 대공황을 예측하고 공매도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은 그는, ‘월스트리트의 큰 곰’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그 성공 이후, 그는 점점 더 큰 금액을 투자했고, 1933년 주식시장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몇 해 뒤, 비극적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은 극적인 성공과 몰락을 오갔고,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투기꾼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