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계절을 붙잡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여전히 약을 먹는다. 상담도 받는다. 가끔은 혼란스러운 말도 한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낯설지 않다. 예전 같았으면 당황했을 장면들 앞에서도 희주는 이제 조금은 익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비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듯 그렇게 엄마의 말들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꼭 필요한 순간에는 손을 잡아준다.
“나... 이 병 안 나을까 봐 무서울 때가 있어.”
엄마가 그렇게 말한 날, 희주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조용히 대답했다.
“괜찮아. 나을 필요 없어. 함께 살아가는 거니까.”
예전에는 그 말조차 하지 못했다. 늘 '곧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떤 병은 완치가 아니라 공존이다.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것이다.
희주는 이제 엄마를 돌보는 사람이라기보다 함께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엄마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도 있고 갑자기 기억을 혼동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조차도 이제는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완치라는 단어보다 무사히 하루를 지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두려운 순간이 있다. 증상이 악화되면 다시 시작되는 밤 불안이 희주를 덮칠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무너지지는 않는다. 희주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한다. “조금씩 흘러가는 거야. 괜찮아.”
계절은 천천히 바뀌고 있다. 봄처럼, 엄마의 얼굴에도 빛이 돌아온다. 여전히 쉽게 웃지 않지만 가끔 “오늘 날씨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날엔 희주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본다.
회복은 끝이 아니라 흐름이다. 무언가를 완성하는 게 아니라 매일을 조금 더 부드럽게 통과하는 일.
때로는 후퇴하고 때로는 그 자리에 머무르기도 하지만 그 안에도 변화가 있다는 걸 이제 희주는 안다.
희주는 그 흐름을 기다리고 있다. 마치 계절처럼 다정하게.
오늘도 무사히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