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아닌데 오래 남는 일들
출퇴근길 9호선에는 룰이 있다.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누가 먼저 앉는지에 따라 하루의 승패가 갈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 있는 법을 배운다.
어깨로 균형을 잡고 손잡이 없이도 중심을 세운다.
출퇴근 9호선은 이미 '서 있는 기술 대회'다.
아침엔 균형을 잡느라 바쁘고
밤에는 버티느라 지친다.
같은 칸 안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이 스친다.
그 안에서 각자의 하루가 마무리된다.
그래서일까.
사람이 많을 때면 나는 한쪽이라도 꼭 에어팟을 꽂는다.
세상의 소음보다 내 음악이 덜 버겁다.
그날도 그랬다.
유리창에 부딪혀 다시 사라지는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열차가 갑자기 흔들렸다.
'툭'소리와 함께 에어팟이 바닥으로 굴러갔다.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였는데
앞자리 남자도 동시에 숙였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둘 다 멈췄다.
짧은 정적 속에서 열차는 그대로 달리고 있었다.
그가 먼저 손을 뻗어 에어팟을 건넸다.
"이거 놓치면 끝이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급행이라 그런가 봐요"
둘 다 피식 웃었고
그 몇 초 사이에 열차는 이미 여의도역을 지났다.
나는 에어팟을 다시 귀에 꽂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음악보다 방금 전 그 순간이 더 선명했다.
잠시 후, 열차가 멈췄고
문이 열리자 그는 조용히 내렸다.
노래가 이어졌지만
마음은 다른 리듬을 탔다.
퇴근길엔 늘 이런 일들이 있다.
별일 아닌데 괜히 오래 남는 일들.
지하철 팁
퇴근 시간에는 자리보다 인내심이다.
문 옆에 서 있어도 아무도 안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