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보다 방전이 필요한 날들
퇴근길, 휴대폰 배터리가 5% 남았다.
충전기? 없다.
콘센트? 없다.
그러니 인생도 이쯤에서 절전모드 들어가야 했다.
어차피 지금 이 에너지도 금방 닳을 테니까.
하필 그때 문자가 왔다.
"회의 자료 내일까지 가능하죠?"
외 와중에 회의라니
진짜 꺼져야 할 건 휴대폰이 아니라 세상 쪽이었다.
문 닫히는 소리, 사람들 발소리,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까지
다 배터리를 갉아먹는 것 같았다.
화면 오른쪽 위 빨간 표시가
이상하게 내 마음 같았다.
'조금만 더 버텨야지'그랬는데
결국 꺼졌다.
순간 조용했다.
아무 알림도 진동도 불빛도 없었다.
이상하게 평화로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충전이 부족한 채로 살고 있구나.
배터리든 마음이든.
그래서 다들 그렇게 피곤한 얼굴이었나 보다.
휴대폰은 꺼졌지만
나까지 꺼질 순 없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충전기가 아니라ㅡ
조금의 방전이었다.
열차가 멈췄고 사람들은 다시 움직였다.
다들 어딘가로 향하지만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화면 속에서도
마음은 이상하게 환했다.
지하철 팁
퇴근길엔 자리가 아니라 플라이트 모드가 필요하다.
세상과 잠깐 끊어져야 마음이 다시 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