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돌려 돌림판

by 덤생

숙식알바의 첫 시작은 겨울의 한 스키리조트였다. 겨울 알바의 꽃이라는 스키장알바는 내 첫 숙식알바의 로망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이었는데도 면접은 전화통화로 대신하고 내일 오라는 초스피드 합격통보를 받았다. 걱정과는 다르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가지 말아야 했었다.


막상 가보니 내가 생각한 발권, 리프트, 안내, 강습 등 스키장에서 할법한 알바가 전혀 아니었다. 그곳에서 한 일은 보험상품 홍보를 위한 개인정보 수집 알바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알바생들도 속아서 왔다고 했다. 100%의 확률로 말이다. 이왕 먼 길 떠나 온 김에 밑져야 본전의 심정으로 일을 시작했다.


도망쳐야 했었다.


하는 일은 간단했다. 이름, 성별, 전화번호, 주소를 받아내면 그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하나 줬다. 상품의 종류는 핫팩, LED 귀이개, 장갑, 조립식 퍼즐, 게임기 등 싸구려 상품이었다. 한 사람의 개인정보가 적게는 5천원 많게는 3만원 정도 한다던데 상품이 너무 저렴한거 아닌가 싶었다. 이것도 대략 몇 년 전 일인데 개인정보 가격도 물가상승률에 맞춰 올랐을까 궁금하다. 아무튼 목이 터져라 개인정보를 털어(?) 내고 상품을 전달하는 일을 반복했다.


배운 점도 있었다. 상품을 받기 위해 개인정보를 친히 넘겨준 분들도 계셨다. 계절별 특성에 따라 준비한 방한마스크는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아이들 장난감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건 만 19세 이상의 성인인데도 불구하고 왜 어린이 장난감이 있나 싶었는데 장난감을 본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싶다고 떼를 써서 부모님이 어쩔 수 없이 개인정보를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때와 장소에 맞는 사은품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전으로 배웠다. 그때 당시엔 이런 것도 경험에서 배워서 뭐하나 싶었는데 대외활동할 때 예시로 아주 잘 써먹었다. 이 알바에서 유일하게 고마운 점이다.


그렇다. 고마운 점을 쥐어짜야 될 만큼 다 구렸다.


기숙사는 허름한 펜션에 몰아두고 생활하게 했으며, 식사는 라면과 컵밥만 줬다. 또한 모 대기업에서 사용해 떠들썩했던 “15분 꺾기”와 “10분 전 스탠바이”도 행해졌다.

* 15분 꺾기 : 임금을 15분 단위로 지급해 1분이라도 부족하면 시급으로 쳐주지 않는 임금체불법

* 10분 전 스탠바이 : 근무시간 10분 전부터 근무를 강요하는 임금체불법


이곳은 심지어 “30분 전 스탠바이”였고 근무시간 내내 사장이 CCTV를 통해 지켜보며 근무행태를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CCTV목적 외 근무태도 감독 활용은 인권침해”라고 밝혔다. 불법과 불법의 연속이었다. 또, 사장이 원하는 실적을 내지 못하는 알바생은 이른 퇴근을 강요했고 그 알바생은 자연스럽게 퇴출되었다.


추노.


알바를 도망치듯 그만둔다는 은어다. 그 추노가 바로 나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려고 할 때쯤 나는 코로나19를 핑계로 빠져나왔다. 그 이후 알바생들이 참다못해 하나둘 그만두자 사장이 알바생들을 근무태만 및 업무방해죄로 신고하겠다 협박한 점은 마지막 피날레로 완벽했다. 끝까지 구려줘서 고맙다. 옛 추억은 미화된다던데 이 알바는 전혀 미화되지 않는 거 보니 어지간히 구렸나 보다. 첫 숙식알바의 경험은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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