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일상

퇴원, 남편의 회복과 나의 회복

둘만의 여행을 다녀온 기분

by LYR

남편의 암수술 후 6일째, 퇴원하는 날 아침 세수를 하며 거울을 봤다. 내 얼굴이 좋아 보였다. 푸석푸석할 것 같은 암환자 보호자 얼굴이 좋아 보이다니 이상했다. 아팠던 목통증과 팔 저림도 나아졌다.


왜 얼굴이 좋아졌는지 생각해 봤다.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의 빠른 회복 덕분이었다.

그리고 오로지 남편만 돌보면 되고 다른 일은 신경 안 써도 돼서 스트레스가 줄었다.

수영하는 아들, 다리 아픈 딸에 대한 걱정들을 모두 뒤로하고 남편만 생각했다. 교통사고 나고 입원 없이 아이들 챙기고 집안일했던 것이 무리였고 그래서 회복이 잘 안 됐었다. 그런데 남편의 병간호를 위해 병실에만 있었더니 나도 회복이 됐다.


한 겨울이었지만 따뜻한 햇살이 늘 비치는 병실에서 천천히 하루하루를 보냈다. 남편이 걸으면 나도 걷고, 남편이 책 읽으면 나도 읽고, 남편이 낮잠 자면 같이 낮잠도 잤다. 결혼 후 처음으로 여유로웠다. 2인실이었지만 퇴원하거나 병실을 옮기는 다른 환자들로 낮동안, 그리고 밤에도 우리만 있는 시간이 많아 1인실 같은 여유를 누렸다. 자주 바뀌었지만 옆환자들도 조용한 분들이라 크게 방해되지 않았다.




수술 당일, 오후 12시 반 남편은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 중이라는 문자만 반복되고 회복 중이라는 문자는 오지 않았다. 걱정되고 초조했다. 남편이 보고 싶었다. 5시 반이 돼서야 회복 중 문자를 받았고 남편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만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을 차분히 위로해 주었다.


배에 폭탄 맞은 것 같다며 숨 쉬는 것도 힘겨워했던 남편은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을 찾았다. 밤사이 가끔 신음소리를 냈지만 잘 견뎌냈다. 다음날 아침 통증이 많이 줄어 병원 복도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이후로 6일 동안 틈만 나면 걸었다. 수술 3일 후부터 먹은 미음과 묽은 죽도 잘 소화시켰다.


3일째 되던 날 머리를 감겨줬더니 겉으로만 보면 환자 같지 않았다. 4일 동안 밤마다 해열제를 맞았지만 그것 빼고는 회복이 잘되고 있었다. 남편과 같은 시간 수술을 한 분은 수술 만 이틀 후에 퇴원을 하셨다. 같은 로봇수술을 했고 성별도 같고, 연령대도 비슷한데 퇴원을 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맹장 수술도 아닌 위암 수술을 받고 이렇게 일찍 퇴원을 할 수가 있나 싶어 의아했다. 남편이 회복이 느린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아주 잘 회복되고 있었다.


입원 7일만 수술 6일 만에 퇴원했다. 4일간 나던 열도 내리고 염증수치, 간수치 다 좋다고 하셨다. 환자복만 빼면 수술 전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체중이 살짝 줄어서 오히려 얼굴이 가름해지고 잘 생겨 보였다.


이렇게 회복이 잘되는 남편 덕에 크게 할 일이 없었다. 집안일과 아이들 케어의 1/10도 안 되는 활동량이었다. 딱 하나 힘든 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 2시간마다 혈압과 체온 측정을 하기에 매번 깼다.


생전처음으로 남편의 머리도 감겨주고, 발도 씻겨주었다. 아기처럼 얼굴도 씻겨주고 매일매일 로션과 선크림도 발라줬다. 옷도 입혀주고 머리도 빗겨주면서 남편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얼굴도 많이 보고, 손 잡고 같이 걷기도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우리 남편 고생 많았구나'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남편과 단둘이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애들 키우고 회사 다니느라 늘 정신없이 살다가 입원하는 동안 처음으로 남편이 제일 우선이었고 남편만 돌봤다. 고생한 우리 집 가장, 내 사랑, 내 사람, 남편에게 미안했다. 정신없이 바빴던 남편이 병원에 있는 동안 마음 편히 쉬고 회복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행 가는 것보다 더 편하고 좋았다. 여행도 일처럼 다녔기에 힘들기만 했었다. 여기서는 바쁜 일이 없었고 뭐 먹을까 고민 안 하고 밥도 안 차려도 되었다. 보호자식도 맛있었고, 편의점 감동란도 더 맛있었다. 암병동이었지만 밝고 깨끗하고 조용해 7일 내내 생각보다 편하게 지냈다.






청소, 빨래, 음식준비, 장보기, 아이들 챙기기에 하루가 참 바빴는데 그런 일들을 하지 않아 오히려 살이 쪄서 집으로 돌아왔다. 부산에서 올라온 큰 언니가 그동안 집안일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도맡아 해 주었다. 큰언니가 있었기에 남편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두 끼만 먹어도 살이 쪘는데 우리 집에 있었던 일주일 동안은 세끼 먹어도 살이 빠졌다고 했다. 남편의 회복과 나의 회복까지 도와준 언니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여든이 넘으신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 봐 말씀을 안 드렸다. 엄마대신 큰언니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 주었다. 어려울 때 언니들이 항상 힘이 되어 준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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