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생각나는 것들
최근에 큰일이 생겼다.
나의 교통사고 한 달 후쯤 남편이 위암 진단을 받았다.
놀랐고 슬펐다. 그리고 미안했고 안쓰러웠다.
남편의 위암 소식으로 며칠 동안은 눈물로 보냈다.
하지만 넋 놓고 울 수만 없었다. 암환자의 보호자가 될 준비를 해야 했다.
수술할 때까지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챙기기 시작했다.
내 몸을 더 빠르게 회복하는 게 가장 우선이었다.
보호자는 환자보다 건강해야 하니깐.
사고 한 달 후부터 오히려 심해진 목 통증에 한의원으로 옮겨 물리치료와 추나요법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쉽게 호전되지 않았지만 치료받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다.
차츰차츰 목 움직임이 편해졌고 팔 저림도 줄어들었다.
소화도 잘 시키고 사고 이전으로 몸무게도 돌아왔다.
딸의 입시, 교통사고로 몇 달 동안 방치했던 집안 정리를 했다.
정리를 하면서 생각정리도 하고 마음 다짐도 함께 했다.
치우고 버리고 싶은 게 많았지만 절반도 하지 못하고 눈에 거슬리는 것만 정리했다.
고장 난 가전을 버리고 아들의 책도 당근으로 내놔 빡빡했던 책장에 공간이 생겼다.
찌고 으깨고 갈 수 있는 기기들이 마땅히 없었다. 그동안은 없어도 큰 불편이 없었던 주방기기들을 이참에 구입했다. 수술 몇 주 전부터 짜고 매운 음식은 확 줄이고 야채를 쪄서 먹기 시작했다. 아빠의 일을 모르던 딸은 의아해했지만 자주 체하는 엄마를 위한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수영하는 아들 라이딩은 나의 사고 후 남편이 대신했다.
하지만 우리가 병원에 가 있는 동안 혼자 다녀야 하기에 수영장까지 버스로 이동할 수 있도록 연습시켰다.
지도를 보며 길을 알려주고, 교통카드를 만들어 쥐어주었다. 수영장 가는 길과 집으로 오는 방법을 차례차례 정리해 문자로 넣어주었다. 춥고 어두운 밤에 혼자 오는 게 힘들어 보였지만 아들은 다행히 잘 따라 주었다.
당장 멈춰도 이상하지 않은 오래된 아들의 키즈폰을 공신폰으로 교체해 주었다. 폰 물량이 없어서 기다리다 입원 3일 전에 간신히 핸드폰을 교체했다. 가장 걱정됐던 아들의 일들을 정리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두려웠지만 운전을 시작했다.
운전대를 잡는 게 쉽지 않았고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수술을 받게 되면 운전을 해야 하니 초보자처럼 조심조심 운전을 시작했다. 아마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운전을 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병원에서 준 책자를 보고 입원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물을 챙기는 동안 많은 생각이 났다.
위암 수술을 받은 둘째 형부, 담낭제거와 유방암 수술을 받은 셋째 언니, 심장 시술받은 엄마 아빠, 자궁근종수술을 받은 큰언니, 맹장 수술받은 조카까지. 그 옆을 지켰던 가족들. 모두 힘들었겠구나. 힘든 순간순간들을 모두 잘 이겨냈구나.
가족들이 힘든 시간을 견뎠을 그때 난 여전히 바빴고, 바쁘다는 이유로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했었다. 그 시간들을 이겨낸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이기적 이게도 내가 힘든 일을 겪으니 이제야 생각났다.
준비하는 내내 그 생각들이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