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 불행 n 단 콤보의 서막 : 예상치 못한 불행의 연속
유방 MRI 촬영 이후에도 경건한 마음으로 매일 산에 올랐다. 지금이라도 매일 산에 올라 간절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살아간다면 있던 암세포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한 나 스스로의 믿음이 있었다. 그 시간 속의 나는 이성적인 사고보다는 이성이나 객관적인 상황 설명에서 멀어진 사고를, 종교적이거나 다른 의미를 가진 사고를 하고 싶어 했다. 암세포가 제발 사라지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기도하였고, 누가 보면 미친 여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 모습으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전부 다 중얼중얼 누구든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 크기로 말했다. 제발, 누구든지 들어 달라고. 그 누군가가 꼭 어떤 신이 아니어도 되니까 아무나 들어달라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제발 왼쪽 유방 조직검사 예약이 잡혔다는 전화를 받지 않게 되길 바라며 일주일을 보냈다. 암환자가 되어보니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결과를 듣기 전까지의 기다림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단순한 기다림 아니 어쩌면 복잡한 기다림, 기다림을 위한 기다림은 단순한 기다림이라면 그 시간을 면밀히 들여다보자면 나는 나도 모르게 나쁜 상상과 좋은 상상을 했기 때문에 복잡한 기다림이기도 했다. 내 마음은 일주일 내내 복잡함과 단순함을 오갔다. 모든 일은 맞기도 하고 다 틀리기도 한 것 같았다.
8일째 되는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왼쪽 유방 조직 검사 날짜가 잡혔다는 것이다. 왼쪽 유방이 평온하면 조직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MRI 검사 결과가 좋지 않으니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또다시, 절망이 먹구름처럼 밀려왔다.
서서히 나를 감싸던 절망이라는 구름은 곧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두껍게 내 모든 것을 막았다.
머릿속이 멍해졌고, 결국 그날 밤 밖으로 나가서 술을 마셨다. 유방암과 알코올의 관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7년이나 술을 끊었어도 유방암이 생긴다면 오늘 하루쯤의 술은 알게 뭐냐는 마음이었다.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이 절망적인 마음을 가지고 왜 무엇인가를 참아내고 금지해야 하는 것인가.
여기까지 오니 나는 그저 운이 아주 나쁜 사람이 구나하는 생각만 들었다.
몇 년 전, 내 유방의 거의 모든 혹들을 조직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결과는 모두 양성이었다. 조직검사를 한다고 해서 꼭 나쁜 결과가 나올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또 위로해 보았다. 그러니 그것에 희망을 걸고 조직검사 예약 날까지 힘을 내고 기다렸다. 조직검사의 의미라는 것이 비록 MRI의 사진 속 나의 조직이 나쁜 형태이지만 암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니 그 사실 하나에라도 희망을 걸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병원 초진이 시작된 이후, 초진까지 한 달을 기다렸고 그 이후의 모든 일들은 매주, 매일이 검사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이 기다림은 매번 피가 말랐고 그 기간은 살아도 사는 기분이 아니었다.
조직검사 예약이 잡힌 날, 영상의학과에 가서 초음파와 함께 주삿바늘로 왼쪽 유방의 여러 곳을 찔러 조직을 떼어냈다. 부분마취를 하였으므로 그 부분이 아프고 그러지는 않았지만 나의 마음은 아팠다. 공포감에 얼굴이 심장처럼 뛰었다. 혹시나, 정말로 왼쪽 유방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이지? 양측 다 절제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되는 것인가? 그럼 나는 양측 유방 모두 제거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다른 환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조직을 떼 내고 계신 선생님께 애써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암으로 의심되는지 어떤지, 크기가 어떻게 되는 건지 이 모든 것은 조직검사 결과 후에 들어도 늦지 않는다. 괜히 물었다가 정확하지 않은 대답으로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는 말자라는 마음이었다.
양쪽 유방에 전부 다 암이 생겼다는 것은 진심으로 일 초도 상상한 적 없던 일이었다.
대체 얼마만큼 운이 나쁘면 양쪽 다 암이 생길 수가 있지?
설마, 그 사람이 나는 아닐 것이다.
암이 있다고 해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내가 열심히 운동하고 기도하고 어디에든 빌어대면 그 결과가 바뀔 수도 있다는 내 안의 믿음은 확고해지기 시작했다. 또다시 미친듯한 간절함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나는 해 낼 수 있다고 나를 격려하고 위로했다. 그 시간 속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하늘의 결정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또다시 매일 북악산 말바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 반드시, 나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지고 말 것이다. 왼쪽은 절대 암이 아닐 것이다. "
이렇게 되뇌면서 걷고, 기도하고, 명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