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냄새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들
2004년, 우리 회사의 생일 파티는 임직원 생일날 회의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떡볶이와 순대, 케이크를 나눠 먹는 소박한 잔치였다. 전 직원이 모여 콜라 잔을 부딪치며 농담을 주고받고, 주인공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던 그 시간. 규모는 작았지만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회사가 성장하며 생일 이벤트도 다양해졌다. 전국 유명 빵집의 간식을 공수하고, 떡 케이크를 준비하며 정성을 더했다. 임원들이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어묵을 삶거나 부침개를 굽는 이벤트는 지금 사진으로 보아도 웃음이 나는 즐거운 추억이다.
하지만 직원이 70명을 넘어서자 월 1회 모두 모여 생일 파티를 하는 것은 물리적 한계가 분명해졌다. 외근이나 출장 중인 직원은 소외되기 일쑤였고, 참석 못한 직원들까지 별도로 챙기다 보니 행정 부담이 너무 컸다. 정성으로 시작한 문화가 점차 감당하기 어려운 비효율로 변해가고 있었다.
고민 끝에 흩어져 있던 소규모 복지 비용을 하나로 통합하기로 했다. 결혼기념일, 생일 선물, 초복, 창립기념일, 크리스마스 케이크비 등 모두 복지포인트 제도 속에 담았다. 우리 규모의 중소기업으로서는 꽤 선제적인 시스템 도입이었고, 외부 기관의 긍정적 평가는 나에게 작지 않은 자부심이었다.
결과는 행정적으로 매우 효율적이었으나, 예상치 못한 내부 저항도 있었다. 예산은 동일하거나 오히려 늘었음에도 장기 근속자들은 "복지가 줄었다"며 아쉬워했다. 떡볶이 냄새가 나던 정성의 자리에 차가운 숫자가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시스템은 세련되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채우는 온도는 숫자로만 계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대목이다.
그때 한 직원이 말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회사에서 준 케이크 들고 전철 탔을 때 손 높이 들고 가느라 힘들었는데도, 지나고 나니 그 장면이 참 기억에 남아요."
과거의 소박한 잔치로 돌아가기에 회사는 너무 커 버렸다. 하지만 그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의 정성은 충분히 전달되었던 것이다.
떡볶이 냄새는 사라졌지만, 이제 직원들은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더 넓은 선택권을 갖게 되었다. 2004년의 떡볶이가 '가족 같은 끈끈함'이었다면, 지금의 복지포인트는 '개인의 존중과 행정의 효율'이다.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무엇이 정답이라 할 수는 없다. 다만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에 맞는 문화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 내가 지난 20여 년간 많고 수십 번의 케이크를 주문하며 배운 리더의 역할이었다. 그래도 문득 그 시절이 그립다. 젊었고,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