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동기라는 말의 무게

편리한 명분과 26년의 신뢰 사이

by O Dan o

“그분 하고 입사 동기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입사 동기요.”


그 말은 오늘 오전 외부 업체와의 미팅에서 들었다. 내 앞자리에 앉은 다른 업체 직원 두 명 중 한 명이, 자리에 없는 자기네 팀 동료를 대화의 소재로 삼아 업무 실수를 물고 늘어졌다. 그 직원은 대화 마지막에 동료에게 툭 한마디를 던졌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타인의 과실에 대해 동기라는 이유만으로 연대 책임을 지우려는 편리한 명분에 불과했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타인들의 대화였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보다 묘한 것은, 그 가벼운 한마디가 너무 익숙해서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우리 회사 동기 셋의 관계를 전혀 낯선 눈으로 다시 보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26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했지만, 입사 동기라는 말을 이렇게 새삼스럽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연구 요원이었던 그들과 경단녀 신입 사원으로 들어온 나는 같은해 입사라는 접점만 있었다. 각자의 직무에서 생존을 증명하기 급급했던 시절, 우리를 묶어준 건 야근 식당의 식탁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서로에게 가장 정직하고 날카로운 거울이 되었다. "그쪽 부서의 병목 때문에 업무가 지체된다"는 비판은 자존심을 긁었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지적이 옳았음을 인정하는 냉정한 이성이 돌아왔다. 동기의 직언은 아팠으나, 오답 노트를 만드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었다.


회사의 운명이 걸린 M&A, 우리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구체적인 제안이 들어왔을 때 대표님은 우리 세 사람을 따로 부르셨다.


"이 중대한 준비를 위해 조용히 실무를 진행해 주십시오."


그날 이후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방파제가 되었다. 나는 실사 과정에서 튀어나올 숫자의 리스크를 방어했고, 그들은 보이지 않는 기술의 가치를 숫자로 증명해 냈다. 전략적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눈빛으로 평정심을 확인했다. M&A는 그렇게 소란 없이, 그러나 치열하게 마무리되었다.


흔히 동기를 경쟁자나 견제의 대상으로 보지만, 우리 셋은 달랐다. 서로의 직무 전문성을 존중하되, 필요할 때 가장 빠른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그것은 거창한 우정이 아니라, '저 기둥이 무너지면 나도 위험하다'는 비즈니스적 동지애에 가까웠다.


직장생활은 생각보다 외롭다. 그 외로운 무게를 견디게 하는 건 거창한 우정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조직 내에서 차마 보일 수 없는 독선을 쏟아내고, 흔들리는 진심을 가감 없이 드러내도 나를 내리려 하지 않는 단단한 신뢰 하나. 우리는 서로에게 기꺼이 그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누구 하나 일방적으로 기대지 않고, 서로의 무게를 똑같이 나누어 짊어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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