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회, 시대가 바뀌면 문화도 바뀐다
2009년 9월 2일 밤, 나는 배낭 안에 와인 반 병을 넣고 사당역에 도착했다. 퇴근 후였다. 혼자였다. 야간 산행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관악산 능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지나쳤다. 무섭지 않았다. 나는 그때 그랬다.
암릉을 지나면 편평한 바위가 나온다. 거기 앉아 와인을 홀짝였다. 달이 밝았다. 도시의 불빛이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뭘 하고 싶은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풍경 속에 있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내려와서 사당역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그 시절 그것이 나를 버티게 하는 방법이었다.
이듬해 2010년 3월, 대표를 포함한 12명의 임직원이 하남 검단산에 오르며 등산 동호회의 첫발을 뗐다. 겨우내 얼었던 산길이 봄기운에 녹으면서 젖은 찰흙이 신발 밑창에 더덕더덕 달라붙었다. 하산 후 마주 앉은 식탁에서 그 고생은 끈끈한 유대감이 됐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다음 산행을 약속했다. 그렇게 동호회가 시작됐다.
나는 항상 선두에 섰다. 대열의 앞을 열고 속도를 조절했다. 진달래가 만개한 수락산, 단풍이 내려앉은 북한산, 눈 쌓인 도봉산. 전국의 능선을 함께 넘는 시간이 쌓이면서 직원들 사이에는 회사에 대한 애착이 두터워졌다. 거창한 구호보다 강력했던 것은 함께 걷는 행위 그 자체였다. 서로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멈춰 서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생을 나누며, 정상의 풍경을 함께 바라보는 경험. 그것은 사무실에서는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등산이 자리를 잡으면서 다양한 동호회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축구, 자전거, 캠핑, 영화, 골프, 낚시.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신호가 왔다. 10년 가까이 매 주말 산을 탔던 원년 멤버들은 누적된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고, 새롭게 합류한 젊은 직원들은 집단적인 산행 문화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개인의 휴식과 취향을 우선시하는 흐름 속에서 등산 동호회는 9년여의 여정을 마치고 해산했다.
해산하던 날, 한 임원이 말했다. 함께 땀 흘린 시간이 직장생활의 윤활유가 됐다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2009년 9월의 그 바위를 떠올렸다. 달 밝은 밤, 와인 한 모금, 아무 생각 없이 쉬던 그 1시간. 지금도 가끔 그 장면이 그립다.
조직의 구성원은 바뀌고 문화의 축은 이동한다. 다만 함께 고생한 기억이 사람 사이를 잇는다는 것, 그것만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