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지우고 기준을 세울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2018년 상공회의소에서 만난 어느 중견기업 전무님은 내게 인생의 바이블이라며 책 한 권을 권했다. 그 책에서 갑자기 마주한 한 문장에 멈칫했다.
"사람들에게 큰 기대를 갖게 하지 마라."
다음 날 아침 일찍 회사에 나가 과거의 메일들을 뒤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내가 보낸 글에는 '기대'라는 단어가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기대 많이 해 주십시오.
기대 가득입니다.
기대 만땅 입니다.
적극적인 활동 기대합니다.
기대하겠습니다.
기대를 보냅니다.
읽어 내려갈수록 얼굴이 달아올랐다. 기대를 심은 것도,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게 부풀린 것도 나였다. 상대는 상상 이상의 결과를 기다리고, 나는 그 끝도 모른 채 허덕였다. 힘이 빠질 정도로 애썼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주변의 눈빛은 늘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 눈빛에 서운해했지만, 사실은 내 언어가 만든 구조적 결함이 원인이었다.
그 이후로 메일에서 기대라는 단어를 지웠다. 보고서의 기대효과도 예상효과나 목표효과로 바꿨다.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심리적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기대는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말이다. 예상은 내가 책임지는 말이다.
이제 나는 상대에게 막연한 기대를 심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으나,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불편함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솔직하게 오픈한다. 이는 변동 가능성에 대한 리스크를 미리 알려준다.
기대라는 거품을 걷어내자 결과는 더 선명해졌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대의 상상력에 휘둘리지 않고 본질에 집중하자 업무의 퀄리티는 오히려 높아졌다.
기대를 지우고 기준을 세우는 것. 그것이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들이 내게 거는 기대는, 과거 내가 남발했던 그 기대와 똑같은 것일까? 그들의 기대는 이제 '기준'이다. 내가 만든 새로운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