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나보다 더 힘든 미국 동료

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에 직장에서 말하거나 글을 쓸 때 항상 영어 비원어민 증후군이 나타난다. 하지만 영어 읽기만큼은 쉽다. 듣기는 상황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진다. 직장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는 쉽다. 문맥을 알기에 이해가 잘 된다. 하지만, 간혹 어떤 동료가 사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모든 영어 단어가 한 귀로 들어와서 다른 귀로 그 순간 쑥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대화에서 전제되어 있는 내용이 대부분 미국 사회문화적인 요소라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영어가 들려도 이해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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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교육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문맥'인데, 영어를 가르칠 때 나는 정작 이 문맥의 중요성을 그다지 크게 느끼지 못했다. 미국 공무원 사회에서 영어로 호흡하며 살다 보니 문맥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험하며 살 수밖에 없다.


영어교육에서는 문맥 교육이 빠진 경우가 흔하다. 문맥은 '이해'와 그 맥을 같이한다. 단어의 개별적인 의미를 아는 것보다 그 단어들이 함께 모여 만든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문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배경지식과 사전지식이 문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처럼 성인이 돼서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문맥기술이 어린아이들보다 더 뛰어나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성인이 돼서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영어 공부에 걸림돌이 될 뿐이지 절대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 영어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내 영어는 절대 영어 원어민 다운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고 단정지으며 끊임없는 영어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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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어 원어민인 리온과 벨라와 함께 일하면서 내 영어 글쓰기 실력과 이해도가 영어 원어민보다 나쁘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업무 관련 토의를 마치고 누군가 토의 내용을 이메일로 작성해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하는데, 리온은 항상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나랑 같이 이메일 쓸 수 있어?"

"아까 우리 했던 이야기 스티브에게 이메일 보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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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이메일 분량을 분담해서 작업하는 날이었다. 내가 담당한 분량을 다 끝내고 앉아 있는데 벨라가 어떻게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벨라가 담당한 부분을 잠깐 훑어본 다음 벨라에게 말해줬더니 벨라는 내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메일로 작성했다.


팀과 함께 업무 토론을 하면 내가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 토론 내용이 내 머릿속에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듣고 있으면 지루하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업무를 제대로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온과 벨라는 갓 대학을 졸업하고 나온 '아가'들이라서 그런지 질문을 잘하지 않는다. 토론이 막 끝나고 우리끼리 얘기하다 보면 딴 얘기하고 있는 리온을 본 적이 많다. 벨라는 특히 상사의 지시가 이해되지 않아도 이해한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은 내가 손을 뻗어 의사소통 경찰이 되어야만 한다.


내가 '영어 비원어민' 증후군에 시달리며 내 영어의 미흡한 점만 강조해 생각하다 보니 리온과 벨라의 모국어 기술이 나의 영어 기술보다 낮다는 점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리온과 벨라가 영어를 쓰는 것과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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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온과 벨라는 영어 원어민이고 나는 영어 원어민이 아니기에 그들의 영어가 모든 방면에서 내 영어보다 더 우월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단정 짓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석사 2년, 박사 4년이라는 6년간 미국 고등교육을 받으며 영어로 이해하는 훈련을 받았기에 그들보다 영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더 높았던 것이다. 나의 영어 비원어민 증후군이 내가 가진 보석을 무가치하게 여기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남편과 함께 같이 퇴근하며 리온과 벨라의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 왈,

"Heart of Darkness(어둠의 심장)을 쓴 작가의 모국어가 뭐였는지 알아?"

"그 작가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란 것은 알아."

"폴란드야."


20대가 되어서야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던 조셉 콘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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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위대한 문학작품을 탄생시켰다. 제미나이(AI)에 따르면 콘라드가 성인이 돼서 영어를 배운 것이 오히려 콘라드를 위대한 작가로 만든 배경이라고 한다. 콘라드는 풍부한 '외국어' 감수성으로 영어를 썼다. 그래서 영어 원어민들이 아무 생각 없이 쓰는 표현을 매우 특이하고 서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미국 공무원 사회에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마이너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 받았던 영어교육과 영어교사 경험이 미국 공무원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플러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직도 어리둥절하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지만 아직도 믿을 수 없다.


한국 주식시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나도 내 영어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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