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 잠수를 끝마친 상사

기약 없이 병가를 떠났던 상사(제이슨)가 며칠 전 갑자기 회사에 나타났다.


8시 출근이지만 난 매일 아침 7시 30분에 회사에 도착한다. 30분 동안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읽고 싶은 책을 읽기 때문이다. 7시 40여 분 정도에 벨라와 리온의 데스크가 있는 통로에서 인기척이 나기 시작했다. 남자 인기척이라 난 리온이 오래간만에 일찍 회사에 나온 줄로만 생각했다. 갑자기 누군가 내 데스크가 있는 통로로 오더니 "Good Morning!"인사를 한다.

Screenshot 2026-02-10 214944.png 회사 근처에서 뜨는 아침 해

병가 잠수를 탔던 그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난 제이슨의 얼굴을 보며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난 몇 달간 상사가 빨리 다시 나와 업무를 가르쳐 주기만을 손꼽아 기다렸기에 너무 반가웠다. 이제부터는 계속 회사에 나올 거라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본다. 리온이 상사의 업무를 도맡아 잘 처리하고 있어서 큰 문제 없이 잘 돌아가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곧이어 도착한 벨라와 리온도 제이슨과 인사를 나누는데, 상사를 봐서 기쁘고 반갑기보다는 오히려 놀라움을 애써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다. (아니,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뭔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


아침 9시에 제이슨은 곧바로 팀 미팅을 열었다. 하지만 제이슨이 미팅룸 의자에 앉기도 전, 제이슨의 상사가 제이슨을 부른다. 리온과 벨라는 서로 눈을 맞추며 말없는 대화를 한다. 결국 상사는 그날 바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오랜 기간 동안 병가로 자리를 비운 탓에 다시 회사로 복귀하려면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 절차가 다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제이슨의 상사는 우리 팀 세 명을 불러 놓고, 제이슨이 월요일부터 정상 근무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 상사의 말대로 제이슨은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벨라와 리온은 여전히 제이슨과 같이 일하는 게 불편한 기색이다.


월요일 아침 우리는 또다시 긴급 팀 미팅을 열었다. 그동안 리온, 벨라 그리고 내가 해 왔던 업무가 무엇이었는지 물어본 다음, 제이슨은 리온이 해 왔던 업무를 계약직 직원인 패티에게 위임하겠다고 한다. 리온이 알겠다고 답변하는 동시에 제이슨의 상사가 제이슨을 부른다. 잠시 제이슨이 미팅룸을 떠난 틈에 리온이 불평을 털어놓는다.


리온: 이제야 돌아와서는 내 업무를 패티에게 주겠다고? 그래 다 줘 버려라.

벨라: 리온, 제발 그런 태도는 좋지 않아.


리온과 벨라의 대화에 내가 낄 틈도 없이 제이슨이 다시 미팅룸에 들어온다.


눈치가 백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 미국 사무실에서는 한국인 눈치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팀에 균열이 생기는 것 같아 걱정이 든다. 리더십을 큰 가치로 여기는 미국 사회에서 내가 과연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다시 생각해 보면 제이슨이 리온의 의견을 물어봤어도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리온이 그동안 해 왔던 업무를 계속하는 것을 원하는지 물어보고 난 후에 업무 분장을 결정했더라면 리온의 감정을 상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리더들이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가볍게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보다. 하지만 결국 리더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몸에 밴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박사 졸업증을 따고 미국 공무원 사회의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이 리더십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박사 따고 미국 공무원 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