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후 1시경 사무실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리온과 벨라, 그리고 다른 팀에서 일하는 니키가 소리를 죽여 이야기를 나누더니 얼마 후 같이 사라졌다. 나 빼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항상 집에서 도시락을 싸 오기에 그들의 점심 모임에 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그들만의 점심 모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많이 서운했다. 서운한 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내 업무에 집중했다.
병가 잠수를 탔던 상사 제이슨이 돌아온 지 4일 차 되던 날 갑자기 팀으로 개인 메시지가 도착했다. 니키가 리온, 벨라 그리고 나까지 총 3명에게 개별 메시지를 보낸 거다.
"오늘 1시쯤에 같이 점심 먹으러 나갈래요? 회사 근처에 좋은 음식점이 있어요."
오늘도 난 도시락을 싸 왔지만, 그들의 비밀 점심 모임에 나를 초대해 준 것에 고마워서 난 덜컥 수락했다. 아직 운전면허증도 차도 없기에 교통편이 어떻게 되냐고 묻자 자기 차가 가장 크니 모두 함께 자기 차로 떠나자고 한다.
한 시가 되자 우리는 제이슨한테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사무실을 빠져나와 음식점으로 향했다. 리온과 나는 차 뒷좌석에 앉았는데, 니키가 차를 출발하는데도 리온은 안전벨트를 맬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리온, 안전벨트 안 매?"
"난 안전벨트 안 매. 운전할 때도 종종 잊어버리고 안 매는 때도 있어"
앞자리에 앉았던 벨라가 리온의 대답을 듣고는 "뭐라고?" 기가 찬 듯 물어본다.
리온이 벨라에게 대답한다.
"뒷좌석은 안전벨트 안 매도 괜찮아."
며칠 전 온라인으로 5시간에 해당하는 안전운전 관련 수업을 들은 터라 나는 자신감 있게 리온에게 말했다.
"뒷좌석 안전벨트 안 매면 벌금 물어야 해."
"아니야. 벌금은 앞 좌석 안전벨트만 해당되는 거야."
벨라도 내 편이 돼서 뒷좌석 안전벨트도 벌금이라고 가세하자, 리온은 마지못해 안전벨트를 맨다. 니키가 사무실 주차장을 빠져나온 지 5분도 안 돼 음식점에 도착했다. 예전에 남편과 두세 번 가 봤던 곳으로, 페루비안 치킨집, 일식집, 피자집, 버거집 등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니키와 리온은 버거집으로 향하고 나와 벨라는 일식집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는 벨라는 일본 음식과 문화를 무척 좋아한다. 벨라는 밥과 다양한 야채를 버무려 먹을 수 있는 초밥 볼을 골랐고 나는 누들 볼을 골랐다.
주문했던 음식이 다 나오자 같은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난 너희처럼 젊은 애들과 함께하는 게 좋아. 너희들 20 대지? 물론 난 38살이라서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회사에는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잖아."
난 40대라 니키에게 뭐라 말하기가 곤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미국에서 사람들은 나를 무척 어리게 본다. 40대지만 30대 중후반으로 생각한다. 니키는 올해 결혼 11년 차로 20살 연상의 여자와 결혼해 와이프의 엄마와 함께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처음 사무실에서 니키를 만났을 때 여자인 니키가 "내 와이프" 이러고저러고 말하는데 사실 좀 충격이었다. 하지만 동성결혼이 합법인 뉴욕이기에 니키의 삶과 선택도 존중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하던 니키가 조용해지자 리암이 갑자기 나한테 질문한다.
"제이슨이 다시 돌아온 게 좋아?"
생각지도 않던 질문이라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고 나서 난 상사가 있는 게 좋다고 하자, 리암이 대답한다.
"제이슨 정말 이상해. 난 제이슨이 우리가 그동안 잘 만들어 놓은 일 처리 절차를 더 복잡하게 만들까 봐 걱정돼. 그리고 제이슨 정말 뭘 많이 먹는데 얼마나 더럽고 시끄럽게 먹는지..."
리온은 제이슨 바로 옆자리에 앉기에 제이슨의 모든 일거수일투를 다 듣고 봐야 하는 상황이다. 니키는 제이슨이 점심만 먹고 잘 안 먹는 사람이라고 알았다고 하자, 벨라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격한다.
"난 오늘 아침 제이슨이 미트볼 먹는 것도 봤어."
벨라의 말에 큰 폭소를 터뜨린 리온은 다시 말을 이어간다.
"난 제이슨이 다시 사무실에 나온 첫날 다 괜찮은 줄 알았어. 수염도 다 잘 깎고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이라서. 그런데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얼굴은 점점 더 초췌해지고 옷매무새도 지저분해지고. 걱정이다."
니키도 리온의 말에 동조한다. 우리 중 어떤 누구도 제이슨이 무엇 때문에 병가를 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두 달이라는 장기간의 병가가 제이슨의 병을 완전히 치유하지는 못했다는 것은 명확한 것 같다. 내가 일을 시작한 지 2주가 되던 때 제이슨이 병가 잠수를 들어갔고 나는 제이슨에게 별다른 업무 지시를 받지 못했다. 벨라와 리온은 일을 시작한 첫날에 오전과 오후 각각 15분씩 휴식 시간이 있다는 것을 제이슨으로부터 들었지만, 난 전혀 듣지 못했다. 제이슨이 그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어졌다는 징후였다.
점심을 끝내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뒷좌석에서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리온은 회사 근처에 작은 호수가 있다고 알려준다.
"초기에 내 상사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 그럴 때마다 저기 호수에 걸어가서 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정말 평온해져. 너희도 언제 시간 되면 한번 가 봐."
오늘 비밀 점심 모임을 통해 리온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에 난 리온이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남자로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 줄 알았다. 그래서 나와 업무 외에는 말도 하지 않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리온은 자기는 쑥스러움을 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몇 주 전에 난 리온이 나만 빼고 사무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만 인사하고 퇴근하는 것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리온이 나를 싫어하는 건지 나를 무시하는 건지 정말 수만 가지의 감정이 뒤엉켜 내 마음을 산산이 부쉈다.
지금은 리온에 대한 내 마음이 많이 회복됐다.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도 리온처럼 특정 사람들에게만 인사를 나누고 퇴근하는 경우가 많다. 사무실 가구 구조가 벌집과 같고 사무실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촉진하는 구조가 전혀 아니기에 생긴 행태 같다. 처음엔 이런 사무실 구조가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혼자 사무실 키친에서 점심을 먹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스나브로 미국화되어 가는 나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