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리치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박사학위 받고도 시급받는 일이 좋다고 했지만 마음만큼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 리치와 함께 있어도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을 멈출 수 없다. 수치심과 조바심 때문에 리치에게 고운 말이 나가지 않는다.
유치원생 담당 선생님이 요청한 코팅작업을 열심히 하는데 선생님이 물어본다.
"이 프로그램 일 끝나면 뭐 하시나요?"
다행히 같이 일하는 케이티가 대답한다.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케이티는 학기가 시작돼 다시 대학교로 돌아간다. '난 직장을 구해야 해요'라는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질문하지 않는다.
수치심이 용솟음친다.
수치심의 의미가 과연 정확히 뭔지 궁금해진다.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자신의 행동이나 업적을 평가한 결과가 매우 비참한 것."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회성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한다고 해도 남의 시선과 평가를 100프로 차단할 수 없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 주변 사람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면 결국은 긍정적인 사회성을 길러야 한다. 수치심이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사회성이 될까? 어떻게 하면 수치심이라는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릴 적엔 고통이 너무 싫었다. 태어나지 않는 사람이 부러웠다. 행복과 불행은 왜 항상 같이 다니는 건지, 고통과 쾌락은 왜 동전의 양면이 되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도 없었고 이해하기 싫었다.
나이 40이 되서야 호불호를 떠나 삶의 진리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수치심도 짝꿍인 '영광, 자랑, 자존감'을 항상 데리고 다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인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