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시작을 당신은 어떻게 하셨나요
7월, 본격적으로 여름을 맞이했던 달이 조용히 마무리되어간다.
올해 여름을 맞이하며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더위 느끼기’였다.
말 그대로 더위 느끼기.
이렇게 말하면 내가 스스로 더위 속에 들어간 것 같은 비장한 느낌을 주지만, 실은 우리 집 에어컨님이 고장 나시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이주일을 조금 넘게 꼼짝없이 더위 속에 들어가 ‘더위 느끼기’를 몸소 실천해야만 했다.
안 그래도 예민하던 차에 에어컨까지 고장이 나다니. 초반에는 고통스러움을 넘어선 짜증이 나서 며칠 내내 심통만 부렸다. 눈앞에 버젓이 있는 에어컨이 이 30도, 아니 35도를 웃도는 더위에서 무용 지물이 되었으니, '더워 죽겠는데 말은 왜 거냐'같은 막무가내 식의 분노로 가득 차 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나는 내 나름대로 ‘더위 느끼기’를 즐기게(?) 되는 노하우가 생겼다. 이건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노하우(를 가장한 놀이)이니, 딱히 따라 할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1. 일단 거실 마룻바닥에 눞는다.
2.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가만히 있어야 한다.
3. 창 밖으로 들어올 바람을 기다리며,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바람을 맞기 전에는 절대 선풍기를 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여름 자체의 더위를 느끼며 불어올 바람을 기다린다. 이게 무슨 고생이냐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그다지 길게 기다리지 않아도 바람은 곧 불어온다. 그 불어오는 바람,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찬 집으로 슬며시 들어오는 여름 바람을 그대로 느낀다.
자연풍을 몸으로 충분히 느꼈다면 선풍기는 그다음 차례로, 선풍기를 만들어 준 우리의 영웅을 찬양하며 (드디어!) 전원을 켜고 밖에서 들려오는 벌레소리와 새소리, 매미소리를 들으며 한적한 마을 정자나 평상을 떠올려 본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자주 나오는, 부채를 들고 수박을 먹으며 평상에 앉아 바깥을 쳐다보는 장면을 떠올리며, 최근 다녀왔던 제주 여행에서 만났던 언니의 집 앞마당에 있다고 상상하곤 했다. 그리고는 잔뜩 얼려놓은 얼음을 전투적으로 컵에 담아 물 ㅡ나의 경우는 커피. 진리의 아아. (아이스 아메리카노)ㅡ 을 '벌컥벌컥' 마신다. 온몸이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스페셜 노하우도 있다.
고모로부터 엄마로 전수된 노하우인데, 특별히 공개하겠다. 물을 가득 채운 페트병을 얼린 뒤 수건으로 감싸서 안고 있기만 하면 끝. 책을 읽을 때나 밥을 먹을 때에는 허벅지 위에, 이불에 들어가 있을 때에는 우리 집 고양이 깜지를 안듯이 꼬옥 끌어안는다. 선풍기 바람까지 더해지면 기분 좋은 시원함을 유지할 수 있다.
다행히도 지금은 에어컨을 고쳐 에어컨 바람이 춥다며 이불을 꽁꽁 싸매고 있는 사치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나만의 더위 노하우를 즐기며 희미하게 불어왔던 여름 바람에 미소 짓던 날이 언제였냐는 듯,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살아?”라는 말은 엄마와 나의 유행어로 자리 잡아 매일 트는 에어컨만큼 매일 하게 되는 말이 되었다.
그러게 정말로, 엄마와 나의 유행어처럼.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이 오직 부채만으로 더위를 버텼던 시절에 사람들은 도대체 더위를 어떻게 났을까. 모든 것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을 텐데. 하지만 그들도 그들의 지혜를 발휘한 그들만의 노하우를 발명하며 여름을 보냈겠지. 내 마음대로 그림을 한번 그려본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는 마을의 큰 나무를 토닥이고는 나무에 기대어 부채를 들고 쉬는 모습. 표면이 뜨겁게 달궈진 계곡에 망설임 없이 흠뻑 젖는 모습. 해가 높이 떠 있는 낮에는 자연에서 시원함을 찾고, 해가 잠든 밤에는 더위에 필사적이었던 하루를 되돌아보며 여름밤 속 공기에 젖는 잔잔한 행복감과 함께 편안한 잠에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에어컨이 최고라는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더위에 완전히 항복해 마룻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내 몸에 바람이 닿을 때의 감각, 그 간지러움을 잊고 살 수는 없겠다고 생각을 한다. 매일 사소하게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을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었던 그런 7월의 하루. 선풍기 바람과 바깥의 자연풍에 의지하며 땀을 뻘뻘 흘리다 저녁이 돼서야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고 해방감을 느끼는, 그런 어느 여름의 하루들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저는 올해 여름을 ‘더위 느끼기’를 통해 꽤나 즐겁게 시작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