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어진 이 당연한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되찾기 위해 ‘죽음을 상상하는’ 방법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부족하거나 한정된 상황일 때 더욱 소중한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유서를 써보며 남은 시간 동안 진짜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정리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바로 그 ‘죽음 앞에서 삶을 다시 정의하는 경험’을 극한의 현실로 보여주는 책이다.
아우슈비츠의 포로들은 죽음과도 다름없는 매일을 살았다. 그러나 그곳에서조차 빅터 프랭클은 인간이 의미를 잃지 않는 한 죽음 속에서도 ->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죽음의 공포가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 아래에서 피어난 삶의 의지와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나도 빅터 프랭클처럼 의도치 않게 ‘강제 감금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다.
대학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첫 방학을 앞둔 상태였다. 어머님께서
“너도 이제 성인인데, 아는 분이 있으니 방학 동안 용돈벌이로 공장 같은 데서 알바해보겠니? 전기 관련이라는데.” 하셔서 “알겠습니다.” 하고 승낙했다.
하지만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알고 보니 ‘공장’이라는 글자에 ‘사’자를 추가한 ‘공사장’이었던 것이다.
(어머님이 빠뜨리셨던 ‘사’라는 글자가 죽을 사(死) 자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옷가지와 이것저것을 챙겨 천안으로 올라갔다. 현장은 지금 많은 분이 이용하시는 천안아산역 KTX 근처의 천안아산초등학교 건설 현장이었다.
우리 팀은 현장에서 전기 배선을 담당하는 전기 파트였다. 대학교 1학년, 일머리도 없는 햇병아리가 작업 보조 중 멀뚱히 서 있다가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거친 아저씨들에게 쌍욕을 먹으면서도 작업 과정을 생각하고, 다음에 무엇이 필요할지 계속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났을 때는 오전에만 천장 전선 후렉시(?)를 40개 따는 등 1인분 몫을 하여 팀에서 인정받았고, 자신감도 생겼다.
이후 끌려간(?) 군대에서도 대대 창고를 관리하는 업무를 했는데, 이때에도 작업 머리와 일머리가 중요해 적응에 큰 도움이 되었다.
디자인학과로 전과한 뒤에도 무언가를 자르거나 만들 일이 많아서 이때의 경험을 살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어디서든 인정받을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보수로 받았던 것 같다.
인생 자체를 놓고 보면 ‘끌려왔다’는 점에서는 아우슈비츠와 같다고도 할 수 있겠다.
너는 너의 의지로 태어났나? 아니다. 우리 모두는 억지로 이 생에 끌려왔다.
그리고 어떤 역할들을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자식으로서, 학생으로서, 또 친구로서…
회사가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매일 아침 지옥으로 끌려간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열차 대신 지하철에 갇혀 터덜터덜 회사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 생이라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그저 고통으로만 받아들일 것인가?
빅터 프랭클은 생지옥 속에서도 자기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나도 이 생에 무작정 끌려왔고,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찾아 수행해야만 한다.
디자이너로서 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초년생 때는 나 스스로도 디자인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정말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ㅎㅎ)
하지만 회사의 대표 디자이너로서 프로젝트는 계속 주어졌다.
좋은 결과물을 내고 싶은 마음에 외부 강의를 듣고, 잡지와 책, 행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내가 찾아봤던 실력 있는 디자인 에이전시에 러브콜을 보내 함께 프로젝트를 하자고 설득했다.
회사 10주년 행사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내가 맡았던 회사 캘린더 프로젝트는 2024년 아시아 3대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7년간 다닌 회사를 나와, 내가 스스로 가둔 ‘일상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
회사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자유’라는 감옥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
최근에는 빈티지 옷에 관심이 많아져 빈티지 숍에서 옷을 찾아보다가, 소량이지만 직접 일본·미국 빈티지 옷들을 매입해 판매하고 있다.
폴로, 리바이스, 칼하트 등 좋은 브랜드의 옷을 정가보다 싸게 입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제 내 방은 옷으로 가득 차다 못해 넘쳐서, 매장이 필요할 지경이다.)
원래 퇴사 후 집중하려 했던 음악 작업은 꾸준히 하고는 있지만, 생업 등으로 정체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자금 사정이 조금 나아져 활발히 발매를 해보려 한다. 세상과 어떻게 하면 더 잘 연결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밀려오는 일들에 지쳐 회사를 감옥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나를 성장시켜준 학교였던 것 같다.
회사를 피해서 나왔지만, 이 광활한 자유의 공기는 오히려 차가웠다.
다시 세상과, 그리고 회사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가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이다.
자유와 속박이라는 시소는 평생 내가 균형을 잡아야 할 과제인 것 같다.
요즘 “너는 T야, F야?” 같은 대화가 일종의 문화 놀이처럼 소비된다.
논리적 판단이냐, 감정적 공감이냐.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이고 ‘성숙한 태도’인가를 두고 구분 짓는다.
하지만 빅터 프랭클이 기록한 아우슈비츠의 현실은 그 모든 구분을 무력화시킨다.
그곳에서는 배고픔이 인간의 전부여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떤 수감자들은 하루치 빵을 포기하고 예술 공연을 들으러 갔다.
이성적(T)으로 보면 그것은 미친 짓이다.
칼로리 한 입이 생사를 가르던 곳에서 음악은 아무 효용이 없다.
하지만 동물보다도 못한 환경에서 삶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회복시키는 순간, 그 음악은 빵보다 값진 생명 유지 장치가 되었다.
프랭클은 말한다.
“인간은 단순히 생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즉, 인간의 본질은 T나 F로 재단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배고픔을 이성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그 배고픔을 ‘의미로 견디는’ 감성적 이성이 인간을 살린다.
그 공연은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도, 웅장한 오케스트라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기침을 참으며 바이올린을 켰고, 누군가는 눈물을 삼키며 낡은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그 순간, 수용소는 잠시 인간의 얼굴을 되찾았다.
그건 생존의 반대말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였다.
밥이 육체를 살린다면, 예술은 존엄의 뼈대를 세운다.
그 둘 중 하나만으로는 인간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T냐 F냐는 틀린 질문이다.
우리는 흔히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해” 혹은 “감정적으로 공감해야 해”라고 말하지만,
수용소의 그 사람들은 ‘생각’과 ‘감정’을 분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통 속에서 의미를 선택하는 이성적 감성의 존재였다.
즉, T도 F도 아닌, S — Sense(의미)로 움직였다.
아우슈비츠에서 하루치 빵을 포기하고 예술 공연을 들으러 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단순히 생존을 넘어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성(T)으로 보면 비합리적 선택이지만, 그들에게 음악은 생존보다 더 깊은 차원의 생명 유지 장치였다.
절망 속에서도 예술을 찾는 행위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 즉 인간 존엄의 회복이었다.
고통을 없앨 수 없을 때, 인간은 그 고통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며 살아간다.
그래서 프랭클이 말한 ‘삶의 태도’는 감성(F)과 이성(T)의 경계를 넘어선,
의미를 감각(Sense)으로 느끼는 인간의 마지막 자유였다.